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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역사] - 10. 태즈메니아의 선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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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0. 2. 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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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역사] - 10. 태즈메니아의 선주민

 

영국인들이 유입되기 전부터 태즈메니아에는 선주민들이 거주했다. 이들은 호주대륙의 선주민들과는 또 다른 인종이었으며 또 다른 문화를 향유했다. 1만 2천년전 빙하기에 호주 대륙과 땅으로 이어져 있을 당시 호주 대륙을 통해 태즈메니아로 들어왔으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완전히 고립된 문화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주 식량으로 물고기와 바닷새, 바다 표범, 갑각류, 연체동물등을 섭취했다. 이들의 외형은 잘 발달한 머리에 납작한 코, 두터운 입술을 지녔다고 서술되어있다. 

태즈메니아 선주민들이 처음으로 마주친 유럽인종은 1772년 마리옹 뒤프랜 대령이 이끈 프랑스 군이었다. 그들은 태즈메니아에 상륙했지만 선주민의 공격을 받고 곧 떠났다. 이후 영국에서 파견한 콜린스 일행이 태즈메니아에 들어오면서 지속적인 접촉이 시작되었다. 

 

태즈메니아에 들어온 영국인들은 식량을 위해서 태즈메니아 캥거루를 사냥하면서 선주민들과 마찰을 빚었고 영국인들중 일부는 무리에서 이탈하여 숲에 살면서 부랑자가 되어 무차별적으로 선주민을 학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국인들과 선주민은 어느 정도 공생에 성공했다. 선주민들은 영어를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였다.

갈등의 불씨는 1830년 발생했다. 부랑자들의 계속된 공격에다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사냥터를 차지하면서 선주민들의 갈등이 폭발하여 태즈메니아에 거주하던 존 쉬원의 거주지를 선주민들이 공격했다. 

 

1824년 태즈메니아 총독으로 임명된 조지 아서 총독은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영국인 부랑자들은 선주민들에게 거리낌없이 총을 발사했고 이로 인해 선주민의 반발이 이어졌다. 영국 법은 선주민의 권리와 생명을 보호한다고 명시되어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선주민들은 삶의 터전과 사냥터를 빼앗겼고 이제 생존을 위한 마지막 투쟁을 할때가 되었다.

아서 총독이 부임하기 전인 1823년에는 18회로 기록된 원주민의 공격이 1828년에는 144회, 그리고 1830년에는 222회에 달했다. 1826년 부터는 체포된 선주민들을 전쟁포로로 취급했다. 

영국군의 블랙라인 작전 - 대부분의 선주민은 이 전쟁에의해 사라졌다. 

7년에 걸친 전쟁으로 영국인은 사상자가 약 370여명에 달했다. 1830년 아서 총독은 태즈메니아에서 선주민과의 공존은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하여 정규군 550명을 포함한 3000명의 군인으로 선주민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실행한다. 

이 작전은 태즈메니아에 거주하는 선주민들을 타스만 반도 방향으로 몰아내 고립시키는 블랙라인 작전이었다. 작전의 목표는 선주민들을 한곳에 정착시켜 그들의 문화를 지속시키는것이었으나 6주간 지속된 작전에 의해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선주민은 남자 1명과 어린이 1명이었다. 

마지막 남은 태즈메니아 선주민 - 가장 오른쪽이 마지막 선주민 투르가니니, 1876년 사망한다.

 

본 목적과 다르게 잔혹하게 진행된 작전에 의해 아서 총독마저도 후회를 했고 잔혹하고 실패한 군사작전이란 오명을 가지게 된다. 이후 섬이나 일부 남아있던 선주민들은 영국의 보호 아래 생존을 이어 갔지만 전염병등의 이유로 1873년 마지막 선주민 생존자 트루가니니를 마지막으로 태즈메니아 선주민 종족은 멸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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