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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동란의 시대 (1598-1613) - 4. 투시노의 도적과 바실리 4세의 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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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0. 2. 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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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드미트리 2세-투시노의 도둑 (Tushino Thief)

모스크바 근처 투시노라는 마을에 자리잡은 두 번째 가짜 드미트리는 그곳에서 자신만의 정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정부군의 지휘관 스코핀 슈이스키공은 모스크바가 이들에게 함락되는것은 막아냈지만 이들을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했다. 가짜 드미트리는 투시노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토지와 작위를 내려주면서 진짜 정부로 기능하려했다. 재판과 처벌을 진행하고 정부의 모습을 갖추자 북부와 남부의 도시들이 그의 권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투시노에 자리잡은 가짜 드미트리의 정부

모스크바와 투시노는 바로 옆에 위치하면서 한개의 나라에 두개의 정부가 있는것 같은 시기를 보냈다. 어떤 가문들은 이쪽 저쪽 옮겨다니기도 했고 또 어떤 가문은 아예 두개의 정부를 섬기기도 했다. 그러나 가짜 드미트리가 3만의 대군을 이끌고 16개월 동안 공격한 성 세르기우스 대수도원의 점령에 실패하면서 그의 권위는 한풀 꺾이게 된다. 

모스크바국의 차르 바실리 슈이스키는 1609년 2월 스웨덴에 도움을 요청하여 6,000명의 스웨덴 파견대를 얻어낸다. 이를 위해 모스크바는 리보니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고 국경지역을 양도해야했다. 또한 폴란드에 대항해서 스웨덴과 동맹을 맺어야만 했다. 1609년과 1610년 초까지 스코핀 슈이스키공은 스웨덴 파견대의 도움을 받아 북부 러시아에서 투시노의 도적과 그 무리를 완벽하게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성 세르기우스 수도원의 포위를 풀었다. 가짜 드미트리와 남은 잔당들은 칼루가로 도망갔다. 

가짜 드미트리가 도망간 칼루가 위치

 

이때 폴란드가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내정에 깊숙하게 관여한다. 가짜 드미트리가 칼루가로 도망가버리자 투시노에 남아있던 봉직귀족들은 폴란드에 손을 뻗는다. 폴란드의 왕 지기스문트 3세에게 그의 아들 블라디슬라프가 러시아의 차르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보낸다. 지그스문트는 이 요청을 수락했으나 당시 투시노의 봉직귀족들은 어떠한 대표성도 지니지 못했기에 이 협약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모스크바와 스웨덴이 맺은 반폴란드 동맹을 구실삼아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지그스문트 3세의 진격은 스몰렌스크에서 좌절되었고 폴란드군은 스몰렌스크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스몰렌스크의 지그스문트 3세

1610년 모스크바 정부군의 지휘관인 스코핀 슈이스키공이 모스크바에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이때 폴란드의 지휘관인 졸키옙스키가 스몰렌스크를 폴란드로부터 구하려는 러시아 정부군을 클루시노 전투에서 패배시키고 오히려 모스크바로 진군해 들어왔다. 모스크바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폴란드 왕자 블라디슬라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폴란드가 모스크바국을 공격해 어느정도 성과를 내자 칼루가로 도망쳤던 투시노의 도적 역시 다시 모스크바로 진격해 들어왔다. 정세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차르 바실리 슈이스키는 1610년 7월 마침내 차르의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퇴위하게되었다. 모스크바국의 성직자, 보야르, 봉직귀족, 평민이 모인 집회에서 폐위 당하여 수도사로서의 삶을 강요받았다. 

차르의 자리는 7명의 보야르로 구성된 보야르 두마가 인수하여 정권을 이어나갔고 므스티슬랍스키가 선임자가 되었다. 차르가 없는 공위기는 1610년 부터 1613년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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