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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동란의 시대 (1598-1613) - 1.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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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9. 12. 1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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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드미트리_ 그리고리 오트예피예프         (1581 - 1606)

러시아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다고 일컫는 시대인 동란의 시대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왕위를 계승한 1598년 부터 미하일 로마노프가 차르로 선출되는 1613년 까지의 시기를 가르킨다. 러시아어로는 수트노예 브레먀로 불리우며 러시아 역사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기를 지칭한다. 

모스크바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커져가는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영주(봉직자)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포메스티예)에서 생활하였고 이러한 체계는 모스크바국의 근간이 되었다. 모스크바국의 수뇌부는 늘어나는 영토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영주들에게 줄 영지를 물색했다. 모스크바가 노브고로드를 획득한 다음 고브고로드 보야르들의 영지 대부분과 노브고로드 교회가 가지고 있던 토지의 절반을 몰수하여 모스크바 영주들에게 지급하였다. 또한 모스크바국이 북쪽과 북동쪽 이외의 모든 방위의 국경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급속하게 국경선을 확장하면서 모스크바 정부와 국민이 받는 부담은 점점 커졌고 이윽고 한계에 다다랐다. 

모스크바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봉직 귀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기독교가 아닌 몽골인들을 봉직귀족으로 편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스크바가 모든 러시아의 땅을 통합했을때 봉직귀족계층인 영주들은 자신들을 대표할 기구를 만들지 못했다. 영국의 의회같은 기구를 만들지 못했던 그들은 곧 이반뇌제에 의해서 살해당했고 사회의 중진층을 급속하게 잃은 러시아 사회는 크게 휘청였고 곧 혼란에 빠지게 된다. 

차르 표도르가 서거하면서 모스크바국의 왕조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반뇌제가 모든 보야르층을 거의 휩쓸다시피하여 사회적 중간지도층이 없는 가운데 보리스 고두노프는 젬스키 소보르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위에 오른다. 그러나 보리스 고두노프의 짧은 제위기 동안 러시아는 많은 고초를 겪는다. (1598-1605)

1601년에는 가뭄과 흉작이 들었다. 이듬해인 1602년에는 수확은 성공했으나 그해의 작황이 좋지 않았고 1603년도 흉작이라고 할 정도로 작황이 좋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현재 차르인 보리스 고두노프는 왕위를 찬탈한 범죄자이며 나아가 이러한 기근이 든 것은 보리스 고두노프라는 범죄자를 차르로 만든 러시아인들에 대한 천벌이라는 소문이다. 

곧 보리스 고두노프가 이반뇌제의 막내아들인 드미트리를 죽이려고 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서 드미트리공은 도망쳤고 곧 자신의 제위를 찾기 위해 돌아온다는 소문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소문이 돌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곧 가짜 드미트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이야기하게될 가짜 드미트리중 첫번째로 나타난 이 인물은 아마도 그리고리 오트레피예프라는 봉직계급의 젊은 청년의로 추정된다. 그는 이러한 소문을 퍼트리다가 모스크바에서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카자크들에게 도망쳤다. 그 다음 리투아니아에 나타나서는 자신이 이반뇌제의 아들임을 주장했다.

많은 폴란드 귀족과 폴란드 정부는 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크라쿠프에서 국왕을 만나 러시아인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겠다며 조건을 걸었지만 의회는 가짜 드미트리에게 군사적 지원을 하는 모험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카톨릭 예수회의 지지를 얻은 그는 일부 폴란드 귀족의 지원까지 얻어 유력 폴란드 가문의 딸 마리나 므니체치와 약혼하고 개종까지하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립했다.

그는 1604년 10월 1,500명에 이르는 카자크와 폴란드인 용병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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