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깜빡 잠이 든 엘지스는 제롬이 빵을 으적이며 먹는 소리에 눈을 떴다. 걸신들린 듯이 음식을 넘기는 모습에 미동도 없이 이 노인네가 이 작품을 쓰느라 며칠이나 굶었는지를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을 우적거리던 빅스비는 엘지스가 조용히 깨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걸 알아챘다.
“뭐야 일어났으면 인기척을 내야지”
퉁퉁거리는걸 보니 빅스비는 완전히 기운을 차린게 확실하다.
“잘먹는구만. 한 3일 굶은 티가 나는군”
“고마워. 자네 없었으면 일어나자마자 아사할 뻔 했군.”
그릇에 남은 빵 한조각 마저 입에 밀어넣던 빅스비는 급히 일어나 외투를 챙겨입으며 말했다.
“지금 저녁시간인거 알지? 나가자구. 친구. 탈고기념으로 저녁 한끼 근사하게 대접하지 ”
나가자는 말에도 엘지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이윽고 엘지스는 입을 열었다.
“자네가 쓴 원고 다 읽었어.”
“벌써? 좀 어떻던가. 친구가 아닌 같은 작가로써 볼 때 말이야”
“.....놀랍더군.”
엘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바닥을 응시하며 넋이 나간듯이 읊조렸다.
“평생에 걸쳐서 만들었다는 말이 실감이 되더군. 정말 빠져들었어.”
“자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다니. 최고의 찬사구만. 어서 옷부터 입게”
빅스비는 엘지스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면서 그를 독촉했다. 그런 빅스비의 모습에 엘지스는 마지못해 외투를 집어든다.
“자네가 쓴 이야기에 대해서 물어볼게 너무 많은데…….”
“가면서 이야기하지. 난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다고. 타코 어떤가? 타코.”
거의 멱살을 붙잡고 집에서 노친구를 이끌어낸 빅스비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의 엘지스가 하는 말은 잘라먹고 메뉴를 정하기 시작했다. 이틀 내내 잠만자고 간단한 끼니까지 먹었더니 성미 급한 제롬 빅스비의 모습이 고대로 나오는걸 보며 엘지스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소세지에 맥주나 한잔 하자구. 대작가님”
“오호! 드디어 날 인정해주는군. 좋은 생각이야. 가자구! 가깝고 맛이 좋은 집을 알아.”
신이 나서 앞장서는 빅스비에게 제롬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메뉴도 정했으니 글에 대한 질문을 해도 괜찮겠나? 친구?”
“하하하 뭐가 그리 궁금한가. 다 읽었다면서”
엘지스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어스름이 깔린 밤거리를 휘감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죽지 않는 남자 말인데. 혹시 자네인가?”
“읽었다면서 왜 그러나 친구. 난 이미 늙어버렸어. 주인공은 늙지 않는다구”
가던 길을 멈추고 이야기하는 엘지스에게 제롬은 과장된 몸짓으로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엘지스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나는 자네를 50년 가까이 지켜봤어. 평범한 사람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네. 비록 주인공인 존 올드맨처럼 늙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
엘지스는 잠깐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그리고 경외의 눈으로 눈 앞의 노인을 쳐다보았다.
"나의 의심은 이 이야기로 확신이 되었네. 무슨 연유이건 나는 자네가 역사 이전의 시기부터 살아왔다고 나는 확신한다네”
엘지스의 말에 제롬은 아무 대답도 없이 물끄러미 엘지스를 바라보았다. 울것같은 표정으로 웃는 제롬의 얼굴에서 엘지스는 어떤 확실한 감정도 읽어내기 어려웠다. 그저 늙은 할아버지의 노쇠한 얼굴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이 읽힐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제롬은 마른 입술을 들썩여 말했다.
“내가 사실이라고 말한다면 그 모든것을 믿어주겠나?”
엘지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엘지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너스레를 떨었다. 평소의 제롬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그럼 걸으면서 이야기 해주지. 나는 아주 배고프다는걸 잊지말라고.”
두 사람은 다시 달이 뜬 밤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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