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팔짱을 끼고 턱을 부여잡은 채 앞장서서 걷는 노인과 그 뒤를 따르는 노인은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걸었다. 이윽고 엘지스는 생각을 끝내고 뒤돌아 빅스비를 보았다.
“그렇다면 가장 앞쪽의 삶은 어떤건지 궁금하다네”
빅스비는 침묵이 끝난것이 기쁜건지 예상했던 질문이라 그런것인지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며 반문했다. 번져가는 주름마저도 웃음같았다.
“자네는 자네의 첫 기억이 무엇인지 기억하는가?”
“뭐?”
예상치 못한 반문에 엘지스는 버벅였다. 첫번째 기억? 그런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버벅이는 엘지스의 모습에 빅스비는 웃는 낯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첫 기억이라고 하면 보통은 시기상 가장 이른 기억을 물어보는거겠지. 하지만 기억이라는건 그렇게 연대표처럼 존재 할 수 있는게 아니라네 친구.”
“그러면…?”
“수많은 삶을 무수히 살게 되면 그 기억들은 겹치기 시작하네. 겹치고 겹치다 보면 가장 앞에 있던 기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되어버려. 그리고 강렬한 자극이 없다면 수많은 시간은 기억으로 남지 못하고 흘러가 버리지.”
“그러면 자네가 존재하던 수많은 시간들은 무용(無用)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네. 당시의 주변과 상황, 환경등을 조합하여 기억해내면 어렵지 않게 자네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다네”
쉽게 기억에 대한 정의와 방법론까지 꺼내 놓는 빅스비의 이야기에 엘지스는 몇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당장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보다는 빅스비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 기억들 중 가장 앞선 기억은 빙하기 일때라네”
“빙하..기….?”
얼굴이 굳어지는 친구의 모습에 빅스비는 급히 덧붙였다.
“아, 물론 그때는 빙하기인줄도 몰랐지. 날씨가 너무 추워서 계속 이동해야만 했어. 빙하기라는 사실은 후대에 와서 추측한것 뿐이야”
엘지스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그렇게 오래전 부터 존재해왔다는건가?’
자신의 옆에 있는 존재가 오래전 부터 존재해왔다는게 새삼 실감이 났다. 은연중에 빅스비가 길어봐야 역사 시대 안에 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빙하기라면 적어도 1만 2천년 전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존 올드맨도 그때부터 존재 해왔으니 얼추 시간이 맞는듯하다.
“그럼 그때가 첫 기억인가 ”
“응,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삶이야. 그때를 한번 이야기 해볼까”
빅스비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그때를 회상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자신의 머리보다 더 희던 그때의 풍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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