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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러시아 통합이후 대외정벌과 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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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9. 1. 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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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통합이후 대외정벌


이반 3세는 러시아의 분령지들을 모두 흡수하면서 모스크바국이 곧 러시아가 되게끔 만들었다. 그의 야망은 러시아의 분령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모스크바 대공들은 키예프 루시 시절의 모든 영토가 모스크바국의 세습재산이라 믿었다. 키예프 시절의 정통성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이반 3세는 대외관계에서 명확히 했으며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493년에 키예프의 옛 땅을 포함하는모든 러시아의 군주인 고수다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키예프 계승의식은 리투아니아와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리투아니아는 키예프의 서부와 남서부영토를 기반으로 지배권을 확대했다. 따라서 리투아니아 역시도 키예프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반 3세가 노브고로드와 트베리를 획득하여 굴복시키자 리투아니아와 모스크바의 경계지대인 오카강 상류의 많은 분령지들은 자신의 주인을 바꾸었다. 그들은 리투아니아를 섬기다가 모스크바국이 강대해지자 모스크바국에 충성하였다. 리투아니아는 이들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 없었고 1494년 협정을 통해서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남쪽의 분령지들이 모스크바 쪽으로 붙었을때 1500년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베드로샤 강둑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리투아니아 지휘관을 포로로 잡고 전리품을 획득하여 돌아갔다. 이 패배는 1503년 평화조약으로 나타났는데 이 조약에서 리투아니아는 모스크바에 점령당한 땅의 종주권을 모스크바에 내주어야했다. 그리하여 이반 3세는 스몰렌스크 일대와 폴로츠크 지역, 그리고 체르니고프와 세베르스크의 많은 부분을 영토로 편입했다. 또한 리보니아 기사단을 대상으로했던 전쟁은 1503년 새로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모스크바국의 영토를 한층 더 넓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국장- 성게오르그기와 쌍두독수리가 모두 나타난다.


이반 3세는 비잔티움제국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바티칸의 후원을 받았다. 바티칸은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투르크인들과 연합전선을 펼치고 싶었지만 그 결혼은 러시아 대공인 이반 3세의 권위와 위상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반 3세는 자신의 문양인 성 게오르기에 비잔티움의 쌍두독수리를 덧붙였고 나아가 차르라는 고귀한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독수리와 차르라는 호칭은 이때 이반 3세때 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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