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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백제의 전성기와 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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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2. 1. 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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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백제의 전성기와 쇠락

백제는 고이왕대를 거쳐 4세기 근초고 왕 때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근초고왕은 대대적인 정복사업을 펼쳐 왕권을 강화했다. 근초고왕은 먼저 낙동강 유역에서 가야의 소국을 정복하고 영산강 유역의 마한 소국들을 정복해서 영토를 남해안까지 확대하였다. 현재의 전라도 지역은 여전히 마한의 전통을 가진 소국들이 존재하고 있고 백제의 중앙집권 체제에 들어오지 않은 소국이 산재하고 있었다. 이곳에 근초고왕은 백제국의 영향력을 넓히려 한 것이다. 

백제군

그리고 다시 기수를 북으로 돌려 대방땅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오천여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 직접 왕이 정예를 이끌고 평양성으로 쳐들어가서 고국원왕을 죽였다. 당시 사냥을 나온 고국원왕은 백제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때 백제가 가장 크게 차지했던 땅은 전라도와 충청도는 물론이고 강원도와 황해도 일대에 이른다. 

 

백제는 서해안을 끼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해상적으로도 크게 발전하였는데, 낙랑군이 하던 중계무역을 이용해서 해상무역로를 개발하여 해상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더욱이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때 백제인들 상당수가 왜로 건너가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해운활동 역시 백제가 한강 하구를 이용할 수 있었다는 지리적 특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국가의 정비가 대략적으로 마무리되는 4세기에 백제는 관등제를 확충하고, 왕위도 부자상속으로 바꾸어 위계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광개토왕이 4세기 후반, 5세기 초반에 확충된 군사력으로 남방정책을 추진하자 백제는 급속히 쇠락하였다. 그러다가 475년 지금의 위례성을 빼앗기고 웅진으로 도읍을 천도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백제는 고구려에 압박을 받던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대응하였다.

신라와의 동맹으로 고구려의 진격을 막아낸 백제는 내부적으로 정비를 진행하고 국력을 기르는데 힘썼다. 또한 외교를 남중국 왕조와 왜와 적극적으로 펼쳐 대외적 안정도 꾀하며 국력의 신장에 신경을 썼다. 이러한 노력으로 백제는 538년 좁은 웅진을 버리고 평야지대인 사비로 다시 천도하였다. 백제 성왕은 이곳에서 남부여로 국호를 고치고 중흥을 꾀하였다. 고구려가 왕위를 놓고 지배층이 분열한 사이에 신라와 함께 한강유역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배신으로 관산성 싸움에서 성왕이 전사하고 3만의 병사가 몰살당하면서 백제의 국운은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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