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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고구려의 등장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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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2. 1. 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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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고구려의 등장과 성장

조선이 멸망한 108년 이후 조선의 강역이었던 압록강 중류지역에서 거주하던 맥족에 의해서 고구려는 건국되었다. 기원전 37년 경 압록강에서 건국된 고구려는 한나라의 현도군을 몰아내며 연맹체를 구성하여 국가를 성립하였다. 기원전 1세기경 부여에서 자란 주몽은 무리를 이끌고 부여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와 세력을 만든 이들은 토착민인 소노부족을 누르고 계루부족으로 연맹체에 속해 주도권을 장악했다. 고구려의 연맹체는 여러 소국과 집단으로 점철되어있었으나 총 5개의 집단으로 정리되었으며 그중에서도 계루부가 왕실이 되어 5부가 되었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 주몽은 강력한 무력정복을 통해 고구려의 영토를 넓혀갔다. 비류국과 행인국, 북옥저 등을 무력으로 정복하였다. 고구려의 정복사업은 1세기 말 태조왕대에 이르러 압록강과 동가강 유역의 소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동쪽으로는 동옥저를 정벌하고 남으로 청천강 상류를 복속시켰다. 이로써 고구려는 동해에 닿으면서 동해안의 풍부한 물산을 얻을 수 있었으며, 중국과의 전쟁을 대비해 후방 생산기지를 확보 할 수 있었다. 나아가서 태조왕은 한나라의 요동군을 공격하고, 현도군도 축출해냈다. 이러한 고구려의 팽창은 2세기 초 북중국 위나라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이런 고구려의 대외팽창은 4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중국의 통일 왕조이던 사마씨의 진나라가 무너지면서 북방 유목민들이 중원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변동기가 나타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영토확장에 나섰다. 남으로는 낙랑과 대방군을 병합하고, 서로는 요동지역을 두고 유목민과 대치했으며, 북으로는 송화강 유역의 부여를 복속시켜 영토를 크게 넓혔다. 이러한 고구려의 급속한 대외팽창은 주변 국가들의 긴장감을 불러왔다. 

4세기 후반 남쪽으로부터 백제, 서쪽으로부터 모영씨의 선비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고, 백제의 근초고왕의 공격에 의해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기도 했다. 이에 고구려는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인구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였다. 소수림왕은 율령을 반포했고, 태학을 설립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의 국내 통치에 주력하였다. 내부적으로 안정된 고구려는 곧 다시 무력전쟁에 나설 준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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