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 건륭제치세와 대일통, 청조의 전성기
건륭제의 치세 60년은 청조의 최대 전성기이자 대일통을 이룬 시기라고 평가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대일통은 영토적 통일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이념까지 포함하는 큰 규모의 통일이다. 청은 산해관에서 청과 대치하고 있을때부터 대일통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홍타이지 시대에 청은 내몽골을 병합하였고 이를 통해 전쟁수행에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공급받기도하였다. 강희제때부터 건륭제 시대까지는 서몽골에서 존속하던 준가르와 70년에 걸쳐서 격돌하였고 결국은 승리하였다. 준가르는 중앙아시아 초원길을 통해 러시아쪽으로 들어가 세력을 존속하였다.
청은 북쪽뿐 아니라 다른방향으로도 군대를 보내어 변방에 대한 수비를 선제적, 공격적으로 펼쳤다. 앞서 말한 내몽골, 외몽골뿐 아니라 서북지역의 신강, 청해를 거쳐 티베트에 이르는 변경지역을 정복하고 차지하였다. 이러한 정복전쟁은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고 평가받는다. 청이 제국으로 발돋움하고, 다수의 민족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자 청은 주변민족을 전담하는 이번원을 설치하여 확대된 영역을 항구히 지배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러한 제도들이 건륭제 연간에 마무리 되면서 영토의 확장과 통일작업이 완수되었다. 이를 대일통의 정치적 측면으로 본다.
또한 이념적인 부분에서는 '덕치'를 고를 수 있다. 이는 '사고전서' 편찬을 통해 이루었다고 볼수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사고전서 편찬사업을 사상 탄압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사고전서는 건륭제의 덕치 이념을 상징적으로 실현한 사업이기도 하다. 청 왕조가 정복왕조임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에 걸쳐 번영하자 고증학자들 또한 지금이 성세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사고전서 편찬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는 이념, 문화적 측면에서의 대일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편찬된 사고전서는 3458종 3만 6383책이라는 방대한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일통의 세계에서 구현된 평화를 바탕으로 청조의 도시와 농촌에서는 인구가 증가하고 각종 물자의 생산과 유통, 소비도 덩달아 증가하였다. 또한 신대륙에서 채굴된 은이 교역로를 타고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이렇게 유입된 은은 다시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다. 중국의 외부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은 적은데 외부세계에서는 중국의 물산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건륭 중반기에는 호부가 관할 하는 은저장고에 2년치 세입에 상당하는 8천만냥의 은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러나 건륭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식량으로 인해 쇠퇴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곡물을 수입해서 소비하는 강소, 절강, 복건, 광동 등지에서는 식량의 부족으로 폭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미곡 수입지에서는 충족되지 않는 곡물 수요로 인해 폭동이 일어났고, 미곡 생산지에서는 양식이 부족할 정도로 외부로 양식을 팔아 폭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폭동에 더해 관료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역시 쇠퇴의 조짐으로 보인다. 그 정점에는 화신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건륭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관료사회에 군림하였다. 그러나 건륭제 사후 가경제는 급속도로 세를 불린 화신을 숙청하며 그의 가산 은 8억냥을 몰수 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백련교도의 난으로 나타났다.
건륭제의 전반기에는 유례없는 대일통으로 대성세를 보냈다. 그러나 건륭제 후반기에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갈등으로 인해 이면에 내제된 갈등들이 분출되었다. 이로인한 사회 혼란의 근본적 원인에는 청대 사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나 버린 인구가 있다. 당시 청의 인구는 3억명에 달했으며 전근대적 사회가 부양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수의 인구였다. 이러한 인구는 청조에 대단한 부담이었으며 이에 명확하게 대처하지 못한 청은 뒤이어 벌어지는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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