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 몽골 제국의 분열과 멸망
바투의 원정군은 러시아의 원정 도중 갑작스럽게 철군을 결정한다. 이유는 우구데이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후임 칸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우구데이칸의 후임은 우구데이의 아들 구유크 칸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구유크 칸이 병사하게 되므로서 후임 칸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균열이 생겼다. 혼란 끝에 선출된 몽골제국의 4대 칸은 뭉케였다. 뭉케 칸은 즉위 직후 혼란에 둘러싸인 몽골 내부를 수습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정도 혼란이 수습되자 몽골은 다시 대외 원정에 나섰다. 뭉케의 지휘 아래 지목된 공격지는 서아시아와 남중국이었다. 원정군 사령관은 자신의 동생인 훌레구와 쿠빌라이를 임명하였다. 1252년 두 방향의 원정군은 몽골초원을 출발하였다.
서쪽으로 향한 훌레구는 1258년 압바스조 칼리프를 멸망시켰다. 1258년에는 바그다드를 점령시키고 서아시아에서 500년간 군림해온 압바스조의 영토를 흡수했다. 또한 쿠빌라이의 원정군은 남송의 사천지방을 공격하였고, 티베트 일대를 정복한 후 티베트 일대에서 북상하여 남송을 압박했다. 뭉케 칸 자신도 1258년 2월 남방을 향하였으나 1259년 7월 갑작스럽게 진중에서 사망하여 몽골군은 철수하게 되었다. 남송 공략은 후임칸의 숙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뭉케칸의 후임으로는 남송원정을 지휘하고 있던 쿠빌라이와 몽골초원에 남아있던 아릭부케가 있었다. 뭉케 사후 몽골초원에서 아릭부케가 쿠릴타이를 준비하자, 쿠빌라이는 서둘러서 몽골 초원으로 돌아간다. 쿠빌라이와 아릭부케가 서로 별도의 쿠릴타이를 개최하고 각자 칸으로 즉위하였다. 두 진영은 전쟁을 벌였고, 고려와 같은 세력을 포섭하고 중국의 압도적인 물자를 장악하고 있던 쿠빌라이에 의해 전쟁은 종식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분열을 계기로 몽골제국은 완전히 분리되는 결과로 가져오게 되었다.
4개의 칸국인 킵차크, 일, 우구데이, 차가다이 칸국들은 중앙 정부와 별도의 독립정권으로 분화해 나갔으며 특히 우구데이 가문은 카이두를 중심으로 쿠빌라이 정권에 대항하기도 했다. 카이두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쿠빌라이는 1260년 4월 칸으로 즉위 한 이후 중국지역을 점령하고 1271년 국호를 대원으로 고치면서 4한국과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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