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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역사] - 4. 대륙에 쏟아지는 관심과 영국의 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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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9. 6. 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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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역사] - 4. 대륙에 쏟아지는 관심과 영국의 선점

 

네덜란드가 호주에 대한 흥미를 잃고나서  반세기 가까이 시간이 지난 이후 호주에 대한 관심은 네덜란드가 아닌 신흥강국 영국이 다시금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사이가 각별해진것이 요인이라면 요인이겠다. 1688년 네덜란드 총독이던 윌리엄 3세가 영국의 왕좌에 오른다. 이로인해서 네덜란드와 영국의 사이는 매우 각별해졌고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양국은 서로간의 반목을 접고 당시 식민지 획득에 가장 큰 장애물이던 프랑스를 공공의 적으로 두고 협력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남반구 해양으로 진출하여 식민지 획득을 진힝하였는데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인도를 장악하며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프랑스, 영국 등의 뒤를 이어서 포루투갈과 스페인등이 뒤따라 왔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하였다.

 

프랑스와 영국이 남반구의 식민지 획득에 열을 올리면서 이 지역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과 모험가들의 탐험이 활발해졌다. 상인들은 새로운 교역물품을 찾았고 대중들 역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남반구 관련 서적의 출판 횟수도 늘어났다. 당시 남반구의 서적들은 호주대륙과 뉴질랜드는 분리된 섬이라는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의 넓은 지역에 대해서는 제대로 탐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보다 호주에 대한 권리를 선점하기 위하여 해군을 동원하여 병력을 파견하였다. 이곳으로 파견된 영국 해군 소속 함정 돌핀은 선장 존 바이런의 지휘아래 174년 부터 1766년 까지 호주대륙을 탐사하고 두번째로 사무엘 윌리스 대령의 항해가 1768년 까지 있었다. 이 두번의 항해 모두 남태평양 지역의 일부 군도를 발견하고 기록하기는 했지만 특기할만한 정보를 추가하는데는 소득이 없었다.

 

영국의 탐사가 별 소득없이 진행되는 사이 호주대륙에 프랑스군이 먼저 상륙하게 된다. 프랑스의 군인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은  당시 프랑스령이던 포클랜드섬을 경유하고 남태평야을 라로질러서 뉴질랜드 동부 해안을 탐사하기 위해 항해했다. 부갱빌은 케이프요크 반도를 발견하고 2000km 이상 펼쳐진 산호초 절벽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대보초)를 발견하였다. 이후 1769년 3월 부갱빌은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부갱빌이 프랑스로 돌아왔을때 영국은 이미 다음 탐험대를 출발시킨 뒤였다. 1769년 3월 영국의 탐험대는 금성의 궤적을 추적한다는 명목으로 프랑스를 압박할 목적으로 남반구 대륙을 영국에 편입할 목적을 가지고 출항하였다. 스코틀랜드 출신 지리학자인 알렉산더 달림플은 뉴질랜드와 남미 사이에 대륙이 있을것이라 믿고 이를 영국에 편입하면 프랑스를 완전히 눌러버릴 것이라 이야기하였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7년 전쟁을 끝난 직후였다.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프랑스를 좀더 압도하여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과 달림플의 이론이 맞아떨어져 탐험대가 꾸려졌다. 선장은 제임스쿡 해군대위로 선정되었다. 쿡은 유능한 항해사이자 군인이었고 그들이 몸을 맡긴 엔데버호는 장거리 항해에 적합한 작은선체를 가졌고 최고의 장비와 숙련된 선원으로 무장된 함선이었다.

 

엔데버호는 1768년 8월 26일 영국을 출항하여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첫번째로 타히티에 도착하였다. 이후 다시 출항하여 뉴질랜드 동쪽 해안 발견을 위해서 이동하였다. 뉴질랜드는 타히티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제임스 쿡은 6개월의 역풍에 맞선 항해 이후 1769년 10월 7일 뉴질랜드의 동쪽 해안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쿡의 탐험대는 6개월간 머물면서 뉴질랜드의 2개의섬인 남섬과 북섬을 탐사했다. 그리고 쿡 탐험대는 뉴질랜드 전역의 해안지도를 완성해냈다. 그후 서쪽방향으로 항해하여 1770년 4월 20일 호주의 동쪽대륙에 닿았다. 쿡은 스스로 이곳이 태즈메니아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은 호주였다. 엔데버호는 동부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4개월간 항해하면서 동쪽 해안을 완벽하게 파악하였다. 백여년전의 네덜란드의 탐험가들이 그랬듯이 제임스 쿡 또한 영국의 주권을 주장하면서 대륙의 동쪽을 뉴사우스웨일스로 명명하였다.

영국은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이 그러하였듯 이곳에 대해서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전쟁을 진 프랑스나 패권을 빼앗긴 네덜란드는 반대의사를 제기하지 않았다.

제임스 쿡의 원정대에 함께 동행한 학자들은 이곳을 조사하고 탐험하였으며 원주민의 삶 또한 면밀히 관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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