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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청제국의 새로운 영토 - 신강과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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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9. 1.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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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제국의 새로운 영토 - 신강과 몽골

(일본해는 좋지않은 표현이니 삼가도록 하자.)


청 제국은 1757년 준가르의 아무르사나를 조혜 장군으로 하여금 격파하고 난 뒤 톈산 남북의의 초원과 사막지대를 모두 정복하였다. 그리고 이곳을 새로운 영역이라는 뜻으로 이곳을 신강이라고 불렀다. 기존의 중국 편제와 달리 신강은 성으로 편제하지 않고 군사적인 특별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청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만큼 민관이 아닌 군관을 배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또한 이 구역을 천산북로, 남로, 동로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현지인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제국은 벡이라는 토착 지배층을 활용하였는데 이들은 정기적으로 북경을 ㅂ아문하여 황제를 알현하여야만 했다. 또한 벡 아래에 바시라는 중간 관리가 존재하여 청조의 지배를 도왔다.


청 제국은 신강 뿐 아니라 몽골도 완전히 자신의 영토에 넣어 어떠한 중국 한인왕조도 하지 못했던 북벌의 꿈을 이루었다. 사실 청 왕조의 몽골 지배는 성격상 다른 영역을 지배하는것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띄었다. 몽골에게 청의 황제는 칸이었고 청 제국은 우리의 대청제국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청의 입장에서 몽골은 강력한 리더가 나타나 통합되면 언제든 목을 겨누는 적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따라서 청은 몽골에 대해 회유와 통제를 적절히 배합한 양면적인 방책을 시행하였다.


회유책은 주로 정략 결혼이었다. 청 황실과 몽골의 지배층은 통혼을 통해서 몽골인들에게 제국의 일원이라는 강력한 의식을 심어주었다. 홍타이지는 몽골 호르친부의 여인과 혼인하였고 그 아들이 순치제가 되었다. 또한 청과 몽골의 수장들은 내몽골 초원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사냥과 연회를 즐겼다.


통제책으로 청은 몽골인들을 팔기제에 편입한것이 있다. 팔기제는 만주인들의 사회 , 군사적 정책이었지만 몽골인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작동하였다. 유목생활을 유지하게 하여서 기마 군대의 원천은 확보하지만 이들이 통합할 수 없도록 목지의 경계를 획정하여 그 영역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통제하였다.  또한 몽골 각지에 대신과 군인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청의 지배책은 청의 지배를 약 200년 가까이 유지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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