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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 여진의 등장과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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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9. 1. 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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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의 등장과 몽골


16세기 후반 여진은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등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있었다. 그중 건주여진 5부 중 완안부에 속했던 인물 누르하치는 나머지 4부를 모두 통합하고 건주여진의 우두머리로 부상했다.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자 그의 세력에 놀란 해서여진 4부(여허, 하다, 울라, 호이파)는 몽골에 속한 호르친부와 내할하 5부등과 연합하여서 1593년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누르하치는 승리하였고 할하 몽골인들은 1603년 누르하치에게 칸이라는 존호를 바쳤고 1616년 여진을 완전히 통합한 누르하치는 청 제국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한다.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즉위한 홍타이지는 몽골 전체의 맹주를 꿈꾸던 동몽골의 릭단 칸과 대립하게 된다. 릭단 칸은 몽골의 좌익과 우익에 속하는 만호들을 통제하고 또 관리를 임명했다. 티베트의 샤카파 교단을 후원하고 몽골어 대장경을 편찬하는등 종교적 통합에도 힘썻다. 그러나 1634년 릭단 칸은 홍타이지와 전쟁을 벌이던 도중 오르도스 방면으로 후퇴했다가 청해방면으로 이동했지만 곧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게된다.

▲청 태조 누르하치:1616~1626


릭단 칸의 아들들과 부인들은 1635년 홍타이지에게 투항하면서 몽골제국시대에 사용하던 전국새를 홍타이지에게 내 주었다. 또한 홍타이지는 여진을 뜻하는 음차어 주션과 후금을 뜻하는 아이신 구룬이라는 말의 사용을 금하고 만주와 다이칭 구른이라는 명칭을 선포했다.  자신들은 금나라의 후예가 아닌 대몽골의 후계자이자 적통임을 선포한것이다.


만주와 몽골의 관계는 홍타이지 시대에 성립되어 청제국이 멸망할때까지 그 골격이 유지되었고 두집단 모두 청제국의 일원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청제국은 임진왜란이후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에 휩싸인 명나라를 복속시켰다. 1644년 산해관을 넘어 장성 이남으로 진입하면서 명은 외부적인 공격과 혼란속에서 내부 반란으로 인해 급속도로 쇠락한다. 이자성의 난으로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은 시안과 개봉, 낙양을 점령하고 뒤이어 북경에 입성해서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이에 명의 숭정제는 메이산 산에서 자살을 했고 산해관에서 오삼계의 명나라군은 청나라에 투항한다. 청에 투항한 명군은 이자성을 토벌한다. 중국의 후베이성으로 도망간 이자성은 1645년 죽임을 당했고 청나라는 중국 대륙 대부분을 장악했다.


청 제국은 일찍이 몽골을 복속시키면서  문화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박시라고 불리는 제국의 서기들은 만주어는 물론 몽골어와 한문에도 능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은 1599년 몽골문자를 이용하여 만주어를 표기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1620~33년에는 몽골문자를 기반으로 만주문자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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