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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과 청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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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9. 1. 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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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과 청 제국


킵차크 칸국이자 주치 울루스의 속령에 속해있던 러시아는 이른바 타타르의 멍에를 쓴채 오랜시간 몽골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쿨리코보 전투 이후 몽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러시아는 16세기 중반 볼가강 유역의 킵차크 칸국의 지역정권인 카잔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무너트리고 동방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1582년 예르막이 코사크인 800명과 우랄 산맥 부근의 시비르강을 건너면서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이 시작된다. 시베리아라는 지명 역시도 시비르강 유역의 시비르 칸국의 이름에서 나온것이다. 러시아는 이때부터 약 70년에 걸쳐서 동쪽의 오호츠크해에 닿을때까지 계속해서 진출했고 러시아 영토의 75%에 해당하는 시베리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은 주로 모피를 원한 경제적인 진출이었다. 담비와 수달 밍크등의 모피를 얻기 위해서 상인들은 자체적으로 탐험대를 조직하여 시베리아로 진출했다. 이들은 시베리아의 독특한 수로 체계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대형 강들의 지류를 따라서 여름에는 배로 겨울에는 썰매로 매우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고 광활한 영토를 러시아가 차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지류들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조그만 성채들이 지어졌고 러시아 본토에서 가난한 농민과 범법자, 모험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주하여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오자 러시아는 군관을 파견하여 성채를 관리 감독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시베리아 전역을 장악해 나갔다.


이러한 거점을 만들어 나가면서 1587년 토볼스크를 세우고 1604년 톰스크, 1619년 예니세이스크, 1632년 레나 강 유역에 야쿠츠크를 건설했다. 그리고 1649년 마침내 오호츠크 해에 도달했다.


러시아는 식량 확보와 자원 조사를 위해서 아무르강을 따라 유역 전체에 탐사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약탈과 방화를 일삼고 살육을 통해서 모피와 식량을 탈취하자 아무르강 유역의 주민들은 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청은 건국 직후여서 병력을 다른곳까지 보낼 여유가 없었다. 하여 청은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다. 조선은 1654년 변급이 지휘하여 150명, 1658년에는 신유가 262명의 소총수를 파견하였다. 1658년 조선과 만주 연합군은 쑹화강가에서 스테파노프의 러시아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러시아 인들의  아무르강 유역으로의 진출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1680년대 초 이곳 알바진에 농경지가 개간되고 약 20여개의 부락이 생겨났다. 강희제는 1685년 기병 1000명을 포함한 400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공격했다. 러시아인들은 후퇴하였지만 만주군이 돌아가자 다시 돌아와 거주지에 살기 시작했다. 1686년 알바진에 군대를 재 파견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당시 중앙아시아에 준가르가 세력을 넓히고 있어 강희제는 조속히 러시아와 이 문제를 해결지어야만 했다.


1689년 여름 양측의 대표가 협상을 위해 네르친크스에 모였다. 러시아와 청은 각각 상당수의 군대를 거느리고 모여 사뭇 긴장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서 국경의 획정과 도망자 처리, 교역에 관한 내용을 담은 네르친크스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강희제는 러시아와 준가르의 갈단이 협력하지 못하도록 러시아를 중립화하여 갈단과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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