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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 다얀칸의 등장과 동몽골의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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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9. 1.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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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얀칸의 등장과 동몽골의 통일


1453년 스스로 칸을 칭했던 에센은 징기즈 혈족이 아니었기에 같은해 바로 피살된다. 에센이 살해된 뒤 몽골 고원에는 명목적인 칸은 존재하나 여러 유력 수령들이 서로 대립하는 혼전 양상이 펼쳐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의 유목민이 혼란을 피해 중국과 가깝고 땅이 비옥하여 풀이 풍부한 내몽골 오르도스 지방으로 모여들었다.


15세기 후반 벡 아르슬란이라는 수령은 다른 수령들을 제압한 뒤 1475년 만두굴을 칸으로 옹립한다. 자신은 타이시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만두굴 칸은 곧 실권을 장악한뒤 벡 아르슬란을 축출한다. 만두굴 칸은 권력을 장악한뒤 새로운 타이시로 이스마일을 임명한다.

그러나 1479년 만두굴 칸이 피살되고 이스마일에 의해서 새로운 칸이 옹립된다. 이 새로운 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이 자가 바로 다얀칸의 아버지인 바얀뭉케였다. 바얀 뭉케 역시 1487년 피살되고 바투 뭉케의 아들 바투 뭉케가 칸에 즉위하는데 이가 바로 다얀 칸이다.


다얀 이라는 명칭은 대원(大元)을 음역한 것으로 몽골 제국의 정통성을 표방하고 또 계승하겠다는 정치적인 의식 또한 포함하고 있다.


다얀 칸은 즉위 직후부터 중국의 북변을 약탈하면서 군사적인 압박을 가하였다. 또한 많은 유목민이 모여있는 오르도스부와 연합하여 영하방면으로 중국을 공격했고 1500~1507년 명나라 서북변에 대한 전면적인 약탈을 시행하였다.  


당시 우익의 만호들이 오르도스부의 수령 이브라힘 타이시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다얀 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친왕으로 삼아 파견하였는데 곧 반란이 터져 아들이 살해당했다. 이에 다얀 칸은 좌익 3만호를 이끌고 오르도스를 공격하여서 1510년에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투메드부의 수령 호오사이를 제압하면서 좌우익에 속하는 몽골인들을 모두 통합하였다. 다얀칸은 몽골을 통일한 뒤 1524년 사망하였다.

다얀 칸은 몽골인들을 6만 호로 재편하여 좌익에 3만호, 우익에 3만호를 배치하였다. 이러한 6만호 체제는 몽골 유목민의 정치적 구성의 뼈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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