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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모스크바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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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8. 12. 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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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모스크바의 등장


러시아가 몽골에 예속된 이른바 ‘타타르의 멍에’의 기간동안  14세기 변방의 보잘것 없는 한 소도시는 역사 속에서 거대한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모스크바 소군주의 후손들은 러시아 역사의 진로를 바꾸어놓았다.


모스크바라는 이름은 1147년에 처음 연대기에 등장한다. 수즈달의 유리 돌고루키 공이 자신의 동맹자인 노브고로드 세베르스크 공국의 스뱌토슬라프 공에게 초청하여 연회를 베푼 기사가 실려있다.  이에 따르면 1147년 이전에 공이 거주하는 마을이나 정착지로서 모스크바는 존재하였다는 말이된다. 모스크바는 노브고로드 - 세베르스크와 랴잔 공국의 경계선에 가까운 스즈달 영토내에 위치하였다. 14세기 현재는 크렘린 궁전이 있는 자리에 목재로된 요새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 옆에는 상인 및 수공업자들의 주거지와 농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모스크바 공들이 어떠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초기의 모스크바 공들은 자주 교체되었고 그들 스스로도 작은 영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영지로 올라가는 발판으로만 모스크바를 생각했던것 같다.  그러나 13세기 후반 모스크바는 새로운 통치자를 맞이하게 되면서 별도의 가문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통치자는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막내아들인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의 후손들은 모스크바에 머무르면서 그곳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또한 그들은 모스크바 강의 중류부분의 물길을 따라서 공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노력했다. 곧 강 중류만을 통제하던 모스크바 공국은 랴잔공국의 공들 중 한명으로 부터 강어귀와 하류를 얻어내는데 성공하고 유산으로 분령지를 받아 영토로 편입하기도 하였다.


1303년 다니엘을 게승한 그의 아들인 유리 또는 게오르기는 또다른 이웃인 모자이스크 공을 경격하여 그의 영토를 모스크바에 병합하였다. 이로써 모스크바 공국은 모스크바 강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였다. 뒤이어 모스크바는 러시아 전체의 주도권을 놓고 트베리의 미하일 대공과 2세기에 걸쳐 투쟁하게 된다. 당시 아직 몽골에게 예속 중이던 시기라 킵자크 칸국의 칸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했는데 트베리는 모스크바와 경쟁하던 도중  1327년 몽골의 토벌 원정대에 의해 트베리가 완전히 파괴되면서 러시아의 주도권은 모스크바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트베리가 파괴되고 유리의 동생이자 모스크바의 공인 이반 칼리타는 대공의 지위를 획득한 1328년 부터 또는 1332년 부터 1341년에 사망할때까지 대공 자리를 지켰다. 이 모스크바의 대공 이반 1세는 재정적 및 행정적으로 모스크바 군주들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이반 1세 다닐로비치 칼리타(러시아어: Иван I Данилович Калита, 1288년 ~ 1340년 3월 31일)


이반 1세는 언제나 킵자크 칸국과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신경을 썼기 때문에  대공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다른 공국들이 칸국에 내는 공물을 거두는 권한을 위임받았다. 이는 곧 모스크바의 수입 증대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땅을 사거나 규합하는데 더욱 열을 올렸다.  또한 이반 1세는 스스로 보유하고있던 블라디미르 공국을 모스크바 공국에 합병시키고 모스크바를 전체 영지의 수도로 삼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반 1세는 모스크바의 영지를 몇배나 확장시키는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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