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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궁의 여동생 추적기 <최종병기 활> - 시간여행자를 위한 프리뷰

정신분열초기/역사자료저장소

by 에이구몬 2018. 4. 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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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신궁의 여동생 추적기 <최종병기 활> - 시간여행자를 위한 프리뷰

- 때는 1636년 인조 5년, 조선의 동북 접경지역.

- 갑자기 나타난 청나라군은 마을을 휩쓸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간다.

- 청나라가 조선에 전격적으로 침입한 사건, 병자호란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 포로로 끌려간 여동생을 구출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골자다.

- 여동생을 쫓아가며 청군을 원샷원킬하는 박해일의 모습은 좋은 볼거리가 되었다. 

- 청군의 캐릭터 또한 특색있어서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박기웅은 참 잘생겼다.

- 박해일은 마주치는 청군을 모두 없애고

- 청군이란 청군은 싸그리 잡아죽인 박해일은 동생과 조선으로 돌아온다. 해피엔딩

- 오늘 우리는 <최종병기 활>의 역사적 배경인 병자호란이 왜 일어났는가를 알아보려고해
  많이들 전쟁의 원인으로 알고 있는 인조의 [친명배금] 정책 말고 다른 학설인 [경제적 이유]에서의 병자호란을 이야기 하려고.

- 정묘호란(1627) - 병자호란(1636) // 그전에 병자호란 이전의 전쟁인 정묘호란에 대해 알아야해.
  이른바 경제전쟁의 원인이 되는 전쟁이거든

- 명나라와의 전쟁때문에 경제적 단절에 처한 청나라는(1627년 당시 후금) 식량부족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 조선에서 이괄의 잔당이 후금에 도착해. 조선 <이괄의 난> 잔당들이 후금에 도망와서 조선군과 명나라 장수인 모문룡의 군사는 약해져 있으니
  지금이 식량난 해결과 배후를 안정시킬 기회라고 속삭인다.

- 모문룡은 조선땅에 눌러앉은 명의 장수로 후금이 점령한 요동을 정벌하겠다면서 조선땅에 들어와
  조선과 명의 지원을 받으면서 무역을 한 패잔병과 상인의 중간쯤 되는 인물이야.

- 이괄 잔당의 이야기를 들은 후금은 명과의 전쟁중에도 3만명에 이르는 군사로 조선을 향해 공격을 해오고 
 임진강을 경계로 조선군과  대치한다. 후금군은 기동력을 앞세워서 열흘만에 평양까지 전격전으로 내려왔어

-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는것이 목적이 아니던 후금은 대치상태에서 배후를 안정시킬 형제의 조약과
 식량부족을 해결할 무역 조항을 포함한 강화안에 만족하고 철수를 하게 돼.

- 그러나 정묘호란의 조약은 청의 기대와는 달리 잘 지켜지지 않아. 조선과의 무역은 신통치 않았고
  약속했던 식량지원도 오지 않았어. 오히려 조선에서는 청에 반대하는 척화론이 우세해지기까지 했지.

- 게다가 눈엣가시이던 모문룡 역시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어. 정묘호란 이전의 문제들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자
  청은 직접 해결에 나섰어. 

- 식량문제 + 모문룡 문제 + 조선의 친명배금 = 병자호란 // 청 태조는 1636년 조선을 완전히 정복하려고 정묘호란 때 군사수의 3배인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 오게 돼.

-  기동력을 중시한 청의 팔기군에 인조는 강화도 몽진길마저 차단당하게 돼. 
   인조는 급히 기수를 돌려서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야했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게 돼.

- 후금은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완전히 복속시키면서 원했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산해관 너머 명나라 중원지방을 안정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어.

- 조선이 정묘, 병자호란을 잘 막았다면 또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 오늘은 병자호란의 발발이유를 경제적 관점에서 살펴 봤습니다. 
  다음주에는 영화 <암살>로 돌아오겠습니다. 씨유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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