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의 이해 기말 과제 영화 <미션>
누가 그들을 야만이라 했는가
-<미션>과 <아포칼립토>, 내가 바라본 남아메리카 인디오
1.나는 왜 <미션>을 선택했는가
나는 왜 미션을 선택했을까. 이 영화에는 아름다운 선율이 있다. 아마 한국인이 가장 잘 아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곡이 아닐까 한다. 엔리오 모리코네의 곡 ‘가브리엘 오보에’ 때문이다.
내가 이 영화를 알게 된 계기 또한 오직 영화에 삽입된 오보에 연주 때문이다. 평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자주 찾아서 듣는 편이다. 귀에 익숙한 음이 들리면 누구의 어떤 곡인지 자주 찾아보곤 한다. 이런 관심 덕분에 작년 서양사 특강에서는 클래식과 관련된 발표를 맡아서 하기도 했다. 서양사 특강에 이어 이번 학기에서도 비록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지만 클래식에 관련되어 과제를 하게 되었다. 이 곡은 영화에서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나온다. 신부가 오보에로 그들에게 환심을 사는 장면은 영화를 보게 되기 전 훨씬 오래 전 부터 많이 봐왔던 영상이기도 하다.
미션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또 있다. 얼마전 친한 동아리 후배가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이 후배는 평소 내가 클래식 곡을 편곡하여 국악기로 연주하는것을 관심있게 지켜봐 왔었다. 그리곤 입대 전날 부탁하기를 나중에 이 곡을 국악기로 불어 줄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최근 편곡과 연습을 하기 시작한 곡인데 마침 세계역사의 이해 과제 목록에서 발견하게 되어 더욱 기쁘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영화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미션을 선택하게 되었다.
게다가 앞으로의 진로를 고고학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남아메리카의 고고학적 유물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두었기에 이 영화의 무대인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일대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또한 비슷한 연출의 <아포칼립토> 또한 비판적인 관점에서 눈 여겨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이 미션을 선택하게된게 아닌가 싶다.
영화의 삽입곡과 남아메리카 인디오들에 대한 관심은 미션을 선택하기에 좋은 계기였다. 영화는 비록 예수회의 선교에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인디오들 그 자체를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2.나는 <미션>에서 무엇을 보고자 했나
과제로써 명화 <미션>을 선택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주제는 두가지였다. 첫번째는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활동이고 두번째는 원주민, 인디오들이다. 그 중에서도 인디오 에게 관심이 많이 갔다. 인디오들에 대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는 인디오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라는 주제였다. 과연 우리의 시선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인디오가 사는 남아메리카는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직접 접할수가 없어서우리에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는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영화의 힘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가 남아메리카 인디오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감히 <아포칼립토>를 꼽는다. 2007년 개봉한 이 영화는 멜 깁슨이 감독을 맡은 작품인데 이 영화 속에서 인디오의 모습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타 부족을 노예로 삼는 모습이나 광기에 미쳐 인신공양을 하는 모습등을 통해서 인디오들이 야만적이라는 인식을 깊이 심어주려는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신공양과 식인문화가 이들을 야만이라고 규정짓는 것이라면 유럽은 물론 한국 역시도 야만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프랑스 혁명 전후 농민들의 식인 기록이나 심청전 역시도 인신공양과 식인의 지울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션에서 얼마나 객관적으로 인디오들을 그려내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였다. 영화는 선교에 대부분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과라니족의 모습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담아내지 못한 인디오들의 몰락 원인을 주제로 넣고 싶었다. 그들의 문화 또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고 싶은 주제였다.
영화 감독인롤랑 조페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미션이라는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선교를 주제로 영화가 흘러간다. 그러나 한국의 근현대 역사 속에서 선교라는 단어는 그리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을 받은 모든 나라들이 그러할 것이다. 열강들은 침략할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먼저 선교사들을 보낸 이후에 선교사들이 순교하게 되면 그 일을 핑계로 침략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본 선교는 평소 내가 생각해 오던 제국주의 침략의 명분 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감독이 카톨릭 신자여서인것인지 아니면 실제 선교가 이러했던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속의 예수회 선교회는 진정 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선교를 통해서 기독교적 이상향을 지상에 재현하고자 하였다.
3. <미션>이 다룬 시대상, 그리고 현실
미션을 보면서 계속 궁금했던것은 과연 예수회 선교사들이 진정으로 인디오들에게 영화처럼 친절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선교사들이 인디오들을 인간으로써 보았을까.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고 선교의 대상으로 삼는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돼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에스파냐는 기본적으로 수세기에 걸친 무슬림과의 투쟁을 통해서 국왕의 권력에 버금갈 정도로 막대한 부와 권위를 가진 존재로 에스파냐 사회에 존재하였는데 영화속 가톨릭 주교는 에스파냐 왕이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단 말을 꺼낸다.
과거 처럼 교회의 권위가 왕을 압도하는 형세가 완전히 뒤집어진 셈이다.
에스파냐와 남아메리카 양쪽에서 교회 문제에 관한 국왕의 지배는 파트라토레알 이라는 제도에 견고한 뿌리를 두고 있다. 식민지에 적용되었던 이 제도는 에스파냐 왕이 아메리카에서 모든 교회의 직책의 임명, 십일조 징수, 교회와 수도원 설립에 대해 절대적 권리를 갖는 것이었다. 에스파냐의 군주들은 이 파트로나토를 가장 소중한 특권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모든 종류의 침해에 대해 날카롭게 대응했다.
남아메리카의 종교에 대해 제도적으로 완비된 상황에서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를 시작으로 남아메리카로 가는 배에는 원정때 마다 한두명의 성직자가 탑승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서 상당한 수의 체류민들이 남아메리카에 있게 되었다. 이들은 군사적 정복의 뒤를 이어서 이루어진 2차 종교적 정복의 첨병이었다.
이 아메리카에 온 탁발수사들은 당시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들은 인디오들의 높은 자질, 그들의 단순 소박함. 그리고 유럽인들의 탐욕과 야심을 그들이 갖고있지 않은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영화에서 가브리엘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러한 수도승들의 기분이 아니였을까. 이러한 성직자들 가운데 다수는 천년왕국적, 유토피아적 이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있었다. 그들은 구원을 기다리는 원주민이라는 비전에 고무되어 원래의 순수함으로 돌아온 기독교의 깃발 아래 원주민 문화와 에스파냐 문화를 결합하여 풍요로운 결실을 거두기를 기대하였다.
멕시코의 주교였던 바스코 데 키로가는 에스파냐 왕에게 토머스 모어의 이상적인 공화국의 모습대로 원주민의 도시를 건설하고 조직화 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그 도시에서 원주민의 천부적인 미덕은 기독교 종교와 문화에 대한 훈련을 통해 보존되고 완벽해 질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왕이 이를 무시하자 키로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미초아칸 지역 산타페에 원주민 마을을 건설했다. 키로가는 이 공동체에서 재산의 공동소유, 농사일과 수공업 노동의 체계적인 교대제, 여성을 위한 일자리 제공, 집단 노동을 통한 생산물 분배, 사치품과 실용적이지 않은 직업배제 등을 규정하였다. 영화 속 주교가 여러 선교회와 마을을 둘러보면서 감동받았다고 하는 선교회들과 아주 유사하다. 영화 속의 선교회는 현재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있는 산 미겔 유산과 아주 정교하게 복제되어 있어 놀라웠다.
개혁적인 이러한 성직자들의 태도는 원주민들을 무제한적으로 착취하려하는 에스파냐인들과의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성직자들은 원주민을 어떤 생각으로 개종시켰을까
초창기 남아메리카의 선교사들은 원주민을 노예화와 착취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개종이라는 자신들의 주요 과업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종이 효과적인것이 되기 위해서는 개종 대상자인 원주민이 정복의 충격을 극복하여 살아남고 그 수가 늘고, 옛 종교 에서 보다 새 종교하에서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남음 이교도 사제들과 몇몇 원주민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탁발 수사들은 엄청난 수의 원지민들을 개종시켰으며 원주민들은 자발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침입자와 함께 들어온 종교를 받아들였다.
선교사들은 선교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원주민들의 언어를 배우기도 했는데 영화에서 가브리엘이 주교와 인디오간의 통역을 맡아 하는걸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선교사들이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고 문법서나 어휘집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자료들은 오늘날의 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특히나 초창기 선교사가 아닌 2세대 선교사들은 정복 이전의 원주민의 생활방식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이해 없이는 이교와의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 할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멕시코에서는 콜럼버스 이전 문화의 풍부한 내용물의 목록작성에 헌신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족지학이 태어났다. 이러한 선교사들은 지적 호기심과 멸망한 원주민 제국들의 물질적 예술적 사회적 성취를 발견하면서 이러한 연구를 진행시켜 나갔으며 이 또한 오늘날의 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도가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곳은 예수회가 활약한 파라과이이다. 영화에 나오는 지리적인 배경이 이곳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었던 이곳에서 예수회는 30개가 넘는 선교구를 설립했으며 이 성교구 들은 아메리카 내 예수회 활동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엄격한 규율과 중앙집중적인 조직, 대규모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순종적인 과라니족의 노동에 대해서 절대적인 통제를 통해 예수회 수사들은 자신들의 선교구들을 매우 수익성 높은 사업체로 바꾸어 놓았다.
파라과이에서의 예수회의 전도와 다른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은 1767년 국왕의 칙령으로 예수회가 식민지에서 추방되면서 끝이 났다. 이 추방조치의 이유중에는 교황과 예수회와의 갈등 영화에 나온것처럼 예수회가 국가문제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심때문에 일어난 국왕과의 갈등, 그리고 예수회가 선교구 안에 또 다른 나라를 건설하고있다는 생각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수회의 추방은 과라니 족에대한 에스파냐 인 관리와 지주들의 착취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과라니 전쟁을 불러온다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한 때 번창했던 예수회 선교구들은 폐허로 변하게 된다.
또 다른 시대상으로는 원주민들이 노예로 가정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당연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밀림 속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와 유럽인들의 노예로 일하게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은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듣는 모습이 영화에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인디오들이 이루었던 수준 높은 문명은 보여주지 않은채 그저 과라니 족을 숲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묘사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의 문명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하인이나 숲속에 사는 미개인으로 그려 놓은것은 인디오들의 문명을 의도적으로 숨기고있다는 의심을 피할수 없다. 인디오들의 문명이 어떤것이었는지 알고 영화를 보는것과 모르고 영화를 보는것은 큰 차이를 가지게 될 것이다.
1) 인디오는 어떤 문명을 만들었는가.
남아메리카의 문명은 크게 아즈텍, 잉카, 마야로 나뉘어 진다. 영화 속 등장하는 폭포는 이과수 폭포나 또는 그 지류로 보여지는데 이 사실을 통해 과라니 족이 이 지역을 광범위 하게 영향을 미쳤던 잉카 문명과 상호 연관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잉카 제국이 첫 번째 문명 같지만, 잉카는 분명 다른 문명의 산물이다. 그 이전에 발전했던 다양한 문화에서 이미 잉카문화에 견줄만한 혹은 그보다 더욱 우수하였던 많은 문화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잉카 황금 유물"이라고 통상적으로 불리는 것들이 실제로는 잉카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 이들이 향유 했던 문명은 수준 높았고 결과만으로 과정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차원적이었다. 안데스 학자들은 잉카제국 이전에 띠띠까까 호수 주변에서 약 500년간 종교 의식과 행정의 중심 도시으로써 매우 번영했던 띠와나꾸 문명을 발견했다. 인디오들의 문명이 결코 수준 낮은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예이다. 마야나 잉카등의 고도로 발달된 도시 축조 기술과 돌 연마 기술은 지금에서도 쉽게 흉내내지 못하는 기술이었다. 훈련된 석공들이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야만 가능한 일들을 남아메리카의 문명들은 만들어냈다. 국가 정도 크기의 정치체제가 아니라면 그 정도 수의 훈련된 석공을 유지해 내지 못했으리라는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잉카의 마추픽추는 산 정상에다가 계획된 도시를 축조해 놓지 않았는가. 저지대로 가면 남아메리카 특유의 피라미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러한 유적들은 과거 최소 십만에서 백만에 가까운 인구가 한 장소에 밀집하여 거주하였고 도시에 가까운 형태를 지닌 거주 체제를 영위 하였음을 알게 한다. 최대 백만에 가까운 인구를 통제하고 살게 하는것은 고도의 도시공학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임을 우리는 명백하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속의 과라니족은 이러한 수준높은 문화를 뒤로하고 왜 밀림에서 살았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최근에서야 제기된 잉카문명의 내부붕괴설에서 그 답을 찾았다.
2) 과라니족은 왜 숲으로 갔을까. - 문명의 내부붕괴
문명의 내부붕괴 문제는 서구 학자들이 고대 국가 및 도시들을 발견하고 연구하게 되면서 항상 논쟁과 탐구의 초점이었다. 외부의 침략에 의한 멸망이냐 아니면 그 이전 부터 내부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느냐는 결국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만 밝혀질 것이다. 그렇다면 잉카문명이 몰락하게된 내부 문제에는 어떤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하자. 우선 1970년대 초기의 설명에는 전염병, 가뭄, 농민반란, 외부 침입등 어떤 것이든 한가지 요인을 강조한 반면 나중에는 다수의 요인들이 각기 일정한 몫을 한 탓에 일어난 체계의 기능 부전을 붕괴의 원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늘어났다.
몰락에 대한 견해를 두개로 나누어 보면 체계의 기능부전을 모델화 하는 시스템적 면을 모델화 하는 견해와 사회적 갈등으로 나누어 보는 견해가 있다.
체계의 기능부전 모델화 견해는 나비효과와 같이 하나의 결과가 또 다른 원인을 불러오는 연쇄작용을 통해 문명이 내부에서부터 붕괴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예를 들면 잉카의 문명이 다수의 사람을 모이게하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 중심지로써 부상하게 되자 이 사회가 인구증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층 집약적인 형태의 농경을 실시하였다고 보았다. 그로써 단기적으로는 수확이 증대되고 인구 또한 단계적으로 증가 하였으나 이러한 방법은 토양을 과잉 개발 하는것이여서 지속 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수요가 극대화 된 바로 그 시점에 생산이 급감하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압박 아래 놓인 생업경제 체제라면 최소한의 작물 질병이나 가뭄이 덮치더라도 특히 취약했을 것이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사회 엘리트 계급의 수가 1%만 늘어나더라도 사회적 불균형이 생기고 하위계급에 대한 요구는 끝없이 증가 하였을 것이다. 엘리트 집단 사이의 경쟁은 더 크고 더 웅대한 건축 사업을 벌이는 쪽으로 표현 되었을 것이고 생산활동은 기본을 이루는 농사를 벗어나 종교 건축물을 짓는 쪽으로 집중 되었고 이는 결국 사회적 분쟁과 분열을 낳았다.
이 두가지 모델 모두 잉카 뿐만아니라 다른 문명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게끔 도식화 되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고전기 마야와 아즈텍등의 문명, 또는 인도의 인더스문명에도 적용이 가능할 정도로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자력생존의 한계점에 달한 문명을 버리고 이탈하는 하위계급층이 많았다. 이들은 밀림으로 들어가 문명의 추격을 피하고자 하였고 밀림에서 적응하여 살아가게 되었다. 이들 중 과라니족의 선조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의 후손이 과라니족이 되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것이다.
영화는 정확한 장소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추측만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것이 아쉽다.
3) 노예 상인 -아프리카까지 뻗친 슬픈 욕심
영화 <미션>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 중 또 한 가지는 노예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이것에 관해서도 상당이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 마드리드 조약 이야기가 나오는것으로 보아 조약이 체결된 1750년 이후의 시간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흑인 노예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흑인 노예들은 1550년 경부터 남아메리카에 노예상들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약 2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것은 감독의 실수이거나 의도적인 장치임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멜 깁슨은 흑인노예들을 의도적으로 영화에서 배제한것으로 생각한다. 영화의 이야기가 가능한 인디오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제작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에스파냐의 ‘개척단’들이 처음 남아메리카지역에 들어왔을때 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 원주민이던 인디오들을 노예로 부리려 했으나 이들은 농경문화에 익숙하지 못했고 유럽인들이 옮겨온 질병등에 항체가 없어서 그 수가 2000만에서 200만 정도로 급감하면서 절대적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하여 앞서 쓰인 내용과 같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사냥’하여 데려오기도 하고
오지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을 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오지에 사는 인디언들을 사냥하면서 돈을 벌던 용병집단, 이들이 반데이란치스이다. 이들이 ‘사냥 해 온 인디오 들은 오브라헤들(작업장들)로 팔려 나갔다. 이곳 작업장들은 16세기, 17세기 옷감이나 기타 물품들을 생산하던 작업장들 중에서 가장 비참한 형태를 띄었다.
그러나 오브라헤들이 처음부터 인디오들을 잡아다 노동을 시킨것은 아니다. 처음의 노동자들은 에스파냐인 판사들이 고용주에게 보내는 죄수로 충원되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다양한 방법에 의해 함정에 걸려든 ‘자유로운’ 인디오 노동장에 의해서 보완되었다. 그들은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갈수 없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과라니족을 공격하는 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군대라기보다는 사립 용병단에 가까웠는데 정글 깊숙히 들어가 원주민들을 잡아 노예로 파는 일을 했다. 영화에서 로드리고는 반데이란치스로 활동하면서 과라니족을 노예로 붙잡아 팔곤 했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나타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것은 과라니족이 도망가다 총에 맞는 장면에서는 cg가 사용되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 어색하여 30년 전의 기술 수준을 가늠하게 하였다.
4. <미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
<미션>의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보내고자 했을까.
비록 보고서는 남아메리카 인디오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있지만 롤랑 조페는 영화를 통해서 종교를 통한 개인의 정화를 보여주고싶어했던것 같다. 노예사냥꾼이였던 로드리고가 과라니족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을 통해 신에게 용서를 비는 인간 상을 보여주고 싶었던같단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동족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노예상인인 까지 용서하는 과라니족의 용서와 순전히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수많은 인디오들을 죽이고 억압하는 소위 ‘개척민’ 들을 비교하여 보여주므로써 당시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시대였는지를 말하고자 하였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인디오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던 그들과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닮은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주민들이 인디오들을 노예로 부리고 인간 취급을 하지 않은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때이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다고 아랍계 또는 동남아시아계 외국인들을 홀대하지 않았는지. 또는 그러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은 조금 지나간 이야기 지만 2년전 한 아이돌 가수가 공항에서 초췌하게 나오면서 자신의 여권사진 모습이 베트남 소녀 같으니 사진을 찍지 말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 장면이 편집심의 당시 문제없이 통과 되었고 그대로 전파를 탔다.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인종차별이 모두의 무관심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신문기사를 찾을 수 없어 2차 가공 자료를 첨부하게 되어서 아쉽다. )
평론가들은 영화 <미션>이 인류애를 상징한다고 한다. 자신이 죽게 될 상황에서도 과라니족과 의리를 지키며 함께 싸우며 죽어간 선교사들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모습이 미안함에서 나오는 일종의 변명 같은 것이라 생각 되었다.
남아메리카에 그리고 전세계에 영화를 통해서 비록 에스파냐, 포르투칼 이주민들이 인디오 들에게 인간적으로 해서는 안될 몹쓸 짓을 하였지만 예수회 선교사 들은 끝까지 의리를 지켰고 모든 유럽사람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자료조사를 하던 도중 일부 영화 리뷰 글에서 과라니족 전쟁 당시에 선교사들은 이미 빠져나가서 영화 처럼 선교사들이 죽는 일이 없었다라는 내용을 읽었지만 이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없었기에 따로 첨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선교사가 남아있던지 아니던지간에 영화 속 선교사들의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희석하려는것만 같아 마음이 씁슬했다. 또한 그것을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감싸서 이 구 세계 이주민들이 한 일들을 점점 작게 만드는것 같았다.
[참고문헌]
장지연, <포켓속의 세계사- 황금도시 잉카문명의 비밀>, 미네르바, 2009
벤자민 킨, 키스 케인즈 지음, 김원중, 이성훈 옮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상>,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2013
콜린 랜프류, 폴 반 지음, 이희준 옮김, <현대 고고학 강의>, 사회평론, 2008
송영복. <Los Mayas>.도서출판 상지사.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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