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 - 예카테리나 2세와 폴란드 1차 분할
예카테리나 2세 대의 영토문제에 있어 가장 빛나는 업적 두가지는 남부의 오스만 투르크 영토문제 해결과 서부의 폴란드 분할에 관여했다는 점이다. 17세기 중반부터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합은 그 정치체제가 가진 약점과 무질서로 인해 파국에 빠져있었다.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합은 의회(세임)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귀족세력과 선출된 유약한 왕에 의한 통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의회의 의원들은 각자가 거부권과 의회 해산권리를 갖고 있었고 이는 정치적인 혼돈상태를 빈번히 가져왔다. 어느 역사가는 이러한 폴란드의 정치적 형태를 내전에 의해서 단련된 무정부 상태로 정의하기도 했다. 게다가 주변의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중앙집권화 되면서 폴란드의 이러한 정치형태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폴란드 분할은 주변에 있던 세 국가인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에 의해 진행되었다. 폴란드 사회는 18세기에 문화적 부흥을 경험했고, 이러한 흐름은 정치 분야로 확대되고 있었다. 시간만 있었다면 폴란드는 스스로 개혁하고 부강해질 여력이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웃 국가들은 이러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폴란드의 마지막 왕이자 예카테리나 대제의 옛 연인인 포냐톱스키는 1764년부터 1795년까지 폴란드를 통치하였다. 그 과정에서 개혁에 착수하고자 했으나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두 나라는 1766년에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게 개신교 소수파와 정교도들에게 가톨릭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도록 강요했고, 폴란드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폴란드의 내부에서는 개혁조치와 왕에 대한 분노, 러사아의 내정간섭에 관한 것들이 뒤섞여 격렬한 항의로 나타났다. 이러한 항의는 바르동맹의 성립과 내전을 초래했다. 프랑스는 바르동맹을 지원했고, 심지어 투르크는 폴란드의 자유를 수호한다며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는 바르동맹을 진압했고, 폴란드는 1772년에 결국 1차분할을 맞이하게 된다.
프로이센은 자국영토에서 떨어져 나가 폴란드에 합병된 땅을 얻기위해 폴란드를 분할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세나라 모두 동의하였다. 러시아는 드비나강과 드네프르강에 이르는 벨라루스 및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땅을 약 130명의 주민과 함께 획득했다. 오스트리아는 갈라치아 지역과 265만에 이르는 주민을 얻었다. 프로이센은 폴란드령 프로이센과 그단스크와 토룬등을 얻었다. 프로이센이 얻은 지역은 크기도 작고 인구도 적었으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효용성으로는 가장 큰 성과였다.
세 나라의 폴란드 1차 분할로 인해서 폴란드는 영토의 ⅓ 과 인구의 ⅓ 이상을 상실했다. 이러한 재앙으로 폴란드인들은 오랫동안 요구되던 개혁을 실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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