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내에 상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다. 1899년 발견된 갑골문과 1920년대 시작된 하남성 안양의 고고학 발굴을 통해 상의 마지막 수도인 은허의 궁전과 왕들의 무덤이 발견되고, 상이라는 글자가 갑골문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상은 20대 왕 반경이 은허로 천도할떄까지 도읍을 다섯번이나 옮겼고 왕위 역시도 형제 상속에 의해 이어지곤 했따. 이는 왕권이 확립되지 못하고 지배 집단 내의 여러 부족들이 경쟁하고 다투었기 때문이다.
상나라는 신정정치로 통치되었다. 상의 왕은 모두 점을 쳐서 국사를 진행했고, 갑골문에 따르면 다양한 짐승이 제사에 쓰이기도 했다. 잡아온 포로 역시도 인신공양의 제물로 쓰이기도 했다. 이때 사용된 제기가 청동기이다. 청동기를 확보하기위해 상은 언제나 대규모 노동력을 조직하고 있어야했다.
당시 동아시아에는 상만 존재하고 있었던것은 아니다. 중원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도 청동기 문명이 성장하고 있었다. 양자강 중류의 신간대양주묘에서는 중원의 청동기와는 다른 양식이 발견되었다. 또 양자강 상류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문명은 훨씬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1985년 사천성 삼성퇴와 2001년 사천성 금사에서는 수많은 상아, 옥기를 비롯해 엄청난 양의 청동기와 황금이 출토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청 동기에는 주로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가 입체 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중원은 물론 다
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특이한 것 들로서,이곳 양자강 상류 사천 지역의 독특한 종교적 문화 전통을 알려준다. 비록 문자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양자강 지역에 상 문화와 다른 독특한 청동기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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