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울루스의 칸국들: 차가타이 울루스
징기스칸이 1207년 부터 1211년 자제 분봉을 실시해서 차가다이가 받은 초봉지는 알타이산지 부근이었다. 이 알타이 산지 부근에 받은 초봉지는 서방원정으로 크게 확장되어 알말릭과 쿠야스 부근에 다다랏고 곧 사마르칸드와 부하라에 이르는 지역까지 모두 포괄하게 되었다. 곧 칸국이라고 불리우는 울루스들 사이에서 중앙에 자리잡게 되어 중앙 울루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입지조건은 제국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변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았고 칸의 권력안정과 이에 따른 정치적 안정 또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차가다이 울루스의 정치적인 독립은 우구데이 가문의 카이두가 사망하면서 두아의 자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두아 칸은 1282년 부터 1307년까지 통치하면서 카이두의 자식들을 분열시키며 우구데이 울루스에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 또한 1306년에는 우구데이 울루스의 칸 차파르를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중앙아시아에서 우구데이 가문의 세력을 축출했다. 그러나 1307년 두아가 사망하면서 반 두아세력이 나타나 차가다이 울루스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두아의 아들 케벡이 반대세력을 축출하고 자신의 형인 에센 부카를 칸에 앉혀 패권장악에 성공하였다.
이후 차가다이 울루스는 1310년 이후 카안 울루스와 훌레구 울루스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1318년 케벡이 즉위하면서 대외적 군사대립이 아니라 평화관계로 돌입하였다.
또한 정치적 중심지를 톈산 북방의 초원에서 트란스옥시아나 지방의 정주지대로 옮겼고 카쉬카다리야 유역에 쿠르시라는 궁전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후계자들의 시대에도 계승되어 15대 칸인 타르마시린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정주사회의 토착귀족과 이슬람 지도자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당시 몽골귀족들은 절반이상이 무슬름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걸로 보아 상당한 이슬람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 1326년 이후 차가타이 한국의 국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차가다이 울루스는 정주지대에 궁성을 짓고 거주하면서 이슬람을 개종하여 토착 귀족세력과 연합하려는 세력과 초원지대에서 유목민적 삶과 전통을 유지하려는 세력으로 갈라져서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각 부족민들은 독자적 권리를 주장하며 분열하였고 이슬람교와 전통종교인 샤머니즘간의 갈등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갈등은 칸의 잦은 교체와 살해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1347년 18대 카잔칸이 살해당하면서 차가다이 울루스는 동서로 나뉘게 된다.
1348년 현재의 신장 지역인 차가타이 울르스 동부지역의 유력가문인 두글라트부에서 투글루크 티무르를 칸으로 옹립하면서 차가타이 울루스는 동서로 분할하게 되는데 동차카타이 울루스는 스스로를 모굴인이라 부르는 유목민의 나라로 모굴리스탄으로 바뀌어 초대 칸인 티무르가 차가타이 울루스를 통합하고 여러 부족의 수령들을 격파하기는 했지만 티무르 사후 이러한 통합은 붕괴된다.
투글루크 티무르에 이어 차가타이 울르스를 장악한것은 발라스부의 티무르였다. 그는 다른 여러 부족들을 제압하고 1370년 서차가타이 울루스를 장악하고 티무르 왕조를 세웠다. 차가타이 울르스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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