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제국의 서방정책
돌궐제국은 흉노와 달리 그 영역이 카스피해 에 미쳤기 때문에 서아시아의 사산왕조는 물론 비잔티움 제국과도 빈번한 관계를 맺게되었다. 돌궐은 사산왕조와 연합하여 헤프탈 훈족을 멸망시키고 아무다리야 강 를 경계로 영토를 분할 하였다. 이로써 돌궐과 페르시아는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페르시아와 돌궐은 비단 교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사산조가 영유하고 있던 국제적 교역로를 우회해 돌궐은 이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당시 페르시아를 경유하던 교역로를 두고 돌궐은 페르시아를 거치지 않고 교역할 길을 찾기위해 노력하였다. 이때 돌궐의 눈에 띄인것이 비잔티움이었다. 비잔티움제국은 당시 사산조와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었기에 돌궐에게는 더욱 안성맞춤인 상대였다. 당시 비잔티움은 532년 페르시아의 군사적 침입에 의해 안티오크를 점령당한 적도 있었기에 비잔티움에게도 돌궐이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되었다.
돌궐이 비잔티움으로 사신을 보낸것은 563년에 일이었다. 568년에도 서돌궐에서는 마니악으로 사신을 보냈고 비잔티움의 유스티누스 2세는 마니악이 귀환할때 제마르코스를 답사로 돌궐에 파견하였다. 비잔티움은 이를 기록하여두었는데 제마르코스는 서돌궐의 카간이 있는 에그타크를 방문하여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제마르코스가 비잔티움으로 돌아간 후에도 양측은 꾸준히 외교관계를 유지하였다. 비잔티움은 568년부터 576년까지 다섯차례 사신단을 파견했고 이러한 지속적인 관계는 627년 군사적 연합으로도 나타나 사산조 페르시아의 티플리스를 포위공격하는데 기초가 되기도 했다. 이에 서돌궐과 사산왕조는 더욱이 외교관계가 안좋아지는것은 물론이고 군사적 충돌도 일어났다. 그러나 650년대에 이르러 새롭게 중국에서 당나라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서돌궐이 당에 복속하면서 이러한 서방세계와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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