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흉노의 서천과 흉노제국의 멸망
48년 흉노의 일축왕 비가 한에 투항하고 신하를 칭하면서 스스로를 호한야 선우로 칭하자 흉노는 북흉노와 남흉노로 갈라지게 된다. 한나라의 영내에서 북흉노와 대립하던 호한야 선우는 고비사막 북방의 북흉노 포노선우와 대립하게 되었다. 남흉노는 한의 지원에 힘입어 북흉노를 정복하고 고비사막으로 돌아가려하였으나 북흉노의 세력이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과 계속 대립했으며 타림분지의 여러 도시들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세력권 아래에 두었다. 특히 쿠차를 앞세워 야르칸드를 정벌하고 세력권내 15개 도시국가에서 병력 3만을 징병하여 호탄을 공격했다. 이는 서역 북도는 물론이고 서역 남도까지 장악하는 군사적 행보였다.
이에 한나라는 73년 장군 두고를 파견하여 북흉노에 군대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두고는 73년 북흉노의 호연왕을 격파하고 74년에는 투르판 일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87년에는 한의 사주를 받은 선비가 동쪽에서 북흉노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인해 북흉노의 58부 20만명이 남흉노로 투항하였다. 또 89년에는 대장군 두헌이 이끄는 군대가 몽골 초원 항가이 산지 부근의 계락산에서 북흉노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이때 제후왕등이 참살되고 21만여명이 한에 투항하였다. 이에 근거지를 버리고 서쪽으로 향하던 북흉노의 선우는 다시금 한나라 군대에게 금미산에서 공격을 받게되고 선우의 모친을 포함한 5천여명이 살해당한다. 이로써 북흉노는 근거지 일대에서 지속적인 타격을 받게되었고 세력을 옮겨 오손의 땅인 일리강 계곡으로 서천하였다. 이에 몽골초원 동북방에 있던 선비족이 북흉노의 옛땅으로 대거 들어오게되고 그곳에 남아있던 북흉노의 잔여세력인 10만落이 스스로 선비를 칭하게 되었다. 이로써 묵특의 흉노 대통합이후 300년간 지속해오던 흉노 제국은 사라지게 되었다.
서천한 북흉노의 세력이 유럽역사에 나타나는 훈족의 세력이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발음의 유사성과 발흥 위치, 그리고 외모의 유사성등에서 그 근거를 두고있다. 그러나 이들이 완전히 같은 세력인지 아니면 100여년이 흐르는 동안 북흉노의 세력과 현지 토착세력의 혼합세력인지에 대해서는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동복이라는 문화적 유사성도 보이나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어 TimeMap 프로젝트에서는 흉노-훈 동족설은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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