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와 두 제국의 줄다리기
중앙아시아의 서부인 서투르키스탄 지방은 일찍부터 지중해 문명과는 접촉을 시작했고 기원전 6세기 경에는 문헌에 등장한다. 그에비해 동 투르키스탄의 여러 도시들은 비교적 기록이 늦다. 정확하고 자세한 문헌은 흉노가 발흥하여 묵특 선우 이후 몽골 초원과 서역을 장악하자 한제국이 이에 대응하여 외교, 군사적 작전을 펼칠 떄였다. 기원전 176년 묵특선우는 한에 보내는 편지에서 누란, 오손, 오걸 및 그 주변 26개국을 모두 흉노의 속국으로 삼았다고 보냈다. 이를 통해 당시 흉노가 타림분지 주변의 크고 작은 오아시스 도시들을 모두 속국으로 삼고 서부로 세력을 확장하였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그 영역은 톈산 산맥 남부와 북부에까지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 장건출사서역도
한나라는 중앙 아시아에 대해서 알게 된것은 장건이 서역을 다녀온 기원전 126년 이후이다. 한나라는 흉노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고비사막 이남의 초원과 하서회랑을 장악한뒤 이를 거점으로 이 타림분지와 서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흉노의 적극적인 견제와 흉노의 속국들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기원전 85년 흉노의 선우가 사망하고 계승분쟁이 일어나면서 한의 서역 진출은 전환기를 맞는다. 한은 서역의 입구에 위치한 누란을 공격하여 국호를 선선으로 바꾸고 왕마저 살해한다. 이후 기원전 60년에는 흉노의 서역지배를 책임지던 일축왕이 휘하의 식솔을 이끌고 한에 투항하면서 흉노와 한의 위치는 뒤바뀐다. 한은 서역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기위해서 현재의 카라샤르와 쿠차 중간의 차디르에 위치한 오루성에 서역도호부를 설치한다. 이로써 한은 서역지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채 한세기가 되지 않고 기원후 10년을 기점으로 왕망이 전한의 왕위를 찬탈하여 한나라 내부의 정치가 혼란스러워지자 서역 지배 역시 파탄을 맞았다. 이후 후한이 들어서며 다시 서역 지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출중한 인물이 반초이다.
반초는 서역지배에 전지적 인물이며 73년 한나라 장군 두고의 휘하에서 서역으로 진출하였다. 74년에는 선선을 굴복시키고 76년 한의 장제가 서역 경영을 포기하려하자 상소를 올려 서역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납득시켜 한의 서역지배를 유지하게 하였다. 이후 102년까지 서역에서 근무하다가 한나라로 귀국하였는데 반초가 사라진 서역이 다시 어지러워지자 그의 아들인 반용이 123년 다시 서역장사에 임명되어 유중에 주둔하며 다소나마 어지럽던 정세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130년대 이후 후한 또한 국력이 약화되며 서역경영 역시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 기원전 1세기경 중앙아시아 타림분지내 도시국가들
이후 흉노와 후한 모두 세력이 약화되자 타림분지의 도시국가들은 각자도생으로 주도권 쟁탈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차라 불리우는 야르칸드가 강성해져 주변 국들을 흡수하였으나 곧 몇개의 세력권으로 나뉘게 된다.
소완,정절,융로,차말등의 동부 도시들은 선선국에 통합되고 서부의 도시들은 우전국이라 불린 호탄에 통합된다. 그리고 톈산 동북부의 여러지역은 거사국이라 불리는 투르판에 병합되었다.
[중앙아시아사] - 흉노의 2차분열 (북흉노와 남흉노로의 분열) (0) | 2018.12.12 |
---|---|
[중앙아시아사] - 흉노와 한의 관계변화 (0) | 2018.12.12 |
[일본사] -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일본 (0) | 2018.12.09 |
[중앙아시아사] - 흉노 제국의 한 전쟁 (0) | 2018.12.02 |
[중앙아시아사] - 동아시아의 유목국가 흉노와 만리장성 (0) | 2018.11.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