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의 2차분열
호한야와 질지의 분열을 흉노의 1차 분열로 본다면 흉노는 다시한번 분열하게 되는데 이를 흉노의 2차 분열이라고 한다. 1차 분열에서는 호한야를 동흉노, 그의 형 질지를 서흉노로 분류한다면 2차 분열에서는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류한다.
▲ 기원전 50년경 흉노의 2차 분열이후 북흉노와 남흉노의 세력구도
왕망정권이 곧 무너지고 나서 후한이 들어서게된다. 이 정권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흉노는 중국의 북쪽 변경을 공격하고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에 후한은 군사를 일으킬 여력이 없으므로 가능하면 화친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이득을 주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노가 군사를 보내어 변경을 공격하면 군사로 막는 소극적인 방어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기원전 50년 을 전후로 흉노가 2차 분열을 하며 상황이 급변하였다.
흉노가 분열하게 된 원인은 언제나 선우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계승전쟁이었다. 기원전 31년 호한야가 사망한 뒤 그의 두 부인에게서 출생한 자식들이 차례로 계승하다가 마침내 ‘여’라는 자가 호도이시도고 선우가 되어 무려 28년간 통치하였다. 그 다음 차례는 자신의 동생이자 왕소군의 아들인 ‘지아사’에게 왕위가 돌아가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이복동생을 살해하고 후계자로 자신의 아들을 세웠다.
70년이상 지속된 형제 계승을 깨버리자 그 다음세대의 최 연장자였던 일축왕 비가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여 48년 휘하의 병사 4만을 이끌고 중국에 투항하여 흉노의 지도를 바쳤다.
일축왕은 조부인 호한야가 일찍이 한에 신하를 칭했으니 그를 따르고자 한다며 스스로 호한야 선우를 칭했다. 그리하여 흉노는 분열하여 북흉노와 남흉노로 나뉘어졌다. 북 흉노에는 호도이시도고 선우가 남 흉노에는 호한야 선우가 들어서게 되었다.
남 흉노는 최초에는 오원서부의 변경 밖 80리 되는곳에 근거지를 마련하였으나 북 흉노의 계속되는 위협에 곧 현재 내몽골 준거얼치에 해당하는 서하 미직으로 선우의 근거지를 옮겼다. 부민들은 서로는 삭방에서 동으로는 대군까지 동서 1000여리에 걸쳐 분포하게 되었다.
남흉노는 한나라의 국경안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신하를 칭하고 공물과 질자를 보내는등 한나라에 완전히 속한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연맹체적 성격을 지니고 흉노 고유의 관제도 보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남흉노는 한나라에 편입되었다기 보다는 관제와 습속을 유지한 속국의 형태로 보인다.
3세기 초 조조는 남흉노의 커져가는 세력을 제어하기 위해서 5부로 나누어서 분치했지만 이는 오히려 흉노가 북중국에 자리잡고 세력을 불리는 신호탄이 된다.
생각해보니 흉노는 동흉노 서흉노 북흉노 남흉노 네가지 흉노가 다 있어서 너무 헷갈릴 수도 있것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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