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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하자르국 (하자르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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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18. 6. 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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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hazaria750.png

하자르의 등장

 

하자르족 역시 앞선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남부 러시아에 오기전 아시아에서 왔다. 또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것 까지 앞선 정복자들과 같았지만 그들의 역사적 역할을 달랐다. 특히나 훈족과 아바르족의 경우와는 아주 달랐다. 그들은 우선 아라비아인들과 격렬히 싸웠고 이슬람교가 유럽으로 확산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들이 국가를 세우고 형태를 갖추었을 때 유럽의 동남부에서 상업과 국제관계로 명성을 떨쳤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던롭(Dunlop) 교수는 매우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하자르국은... 아랍세력의 전방에 위치한 자연적 방어선을 따라 위치하고 있던 국가이다. 무함마드가 죽고 (632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랍 군대는 쇠약해진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두 제국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전진하여 마침내 코카서스라는 거대한 산악 장애물과 마주쳤다. 일단 이 방어벽을 넘기만 하면, 거기서부터는 동유럽으로 얼마든지 쉽사리 이동할 수가 있었다. 아랍인들이 막 그러한 시도를 했을 때,그들은 이 지역에서 자신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세력과 마주쳤다. 비록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랍인들과 하자르인들간의 전쟁은 한 세기 이상 지속되었으니, 마땅히 이는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하자르족은 반유목민이었지만 볼가강 입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수도인 이틸과 사만다르 사르킬등의 도시를 건설했다. 두 대륙의 교차점에 위치했다는 것은 하자르의 탁월한 위치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 던롭의 말에 따르면 “하자르가 번성한 것은 분명히 국가 내부의 힘이나 자원보다는 중요한 교역로를 가로지르는 유리한 위치 덕분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하자르의 수입은 결과적으로 보면 러시아 평원을 향하여 서쪽으로 지배력을 확대시키면서 발생한 조공과 관세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자르에는 이교도와 이슬람교도, 기독교, 유대인들이 뒤섞여 살고 있었고 모두가 상당한 자유와 자치권을 누리면서 자신들의 법 아래 살아가고 있었다. 하자르 인들은 8-9세기 (한반도에서 고려이던 시기)에 특이하게도 투르크계 유목민이 세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740년 경을 기점으로 국교로 유대교를 받아들인다. 왕과 귀족들의 이름도 요셉, 아론, 다윗같은 유대인의 이름을 쓰게 되었다.

아라비아 및 비잔티움 세계뿐 아니라 몇몇 다른 문명들과 긴밀하게 맺은 연계관계와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교역관계, 전반적인 세계시민주의 등 하자르인들이 이룩한 발전은 키예프국이 등장할 무렵의 러시아평원에서 전개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의 한 흐름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하자르인들은 상업을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훨씬 더 북쪽 불가리아인들의 대규모 상업적 교류 또한 주목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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