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선사시대
러시아의 선사시대에 대해서 고고학자들은 이미 후기 구석기 시대 (3만 5,000년과 1만 년 이전 사이)에 러시아 평원에서 수렵-채집 공동체의 흔적을 조사하면서 각종 도구, 무기, 매머드 뼈로만든 주거지, 장신구 그리고 종교용일것으로 추정되는 예술품등의 유물을 찾아냈다.
기원전 4,000년 무렵에 시작된 신석기 시대는 특히 남쪾에 있는 드네프르 강, 부크 강, 드니에스테르 강의 계곡에서 풍부한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발굴 유물들을 보면 이 지역에 이미 농업이 뿌리내렸으며, 남부 러시아와 그 이후의 러시아 역사에서 정착민들과 침략자 유목민들 사이에 주기적으로 투쟁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가축을 길렀으며, 베를 짰고, 발달된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관련성을 정확하게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굽은 나선형 도자기”는 이 지역이 중부 유럽의 남쪽 지역만이 아니라 소아시아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고리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는 금속을 사용하던 문화가 캅카스 산맥 북쪽에 있는 쿠반 계곡에서 발달했는데, 이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유사한 문화와 시기적으로도 같다. 수많은 매장지에서 발견되는 구리, 금, 은으로 만든 제품을 보면 그것들을 만든 장인들의 기술과 미적감각이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왔는지 알 수 있다. 남부 러시아의 청동기 시대가 비교적 적게 알려져 있고 유물이 적게 나온 반면에, 철기시대는 역사적으로 실존한 최초의 사람들이 침입해 들어와서 러시아 스텝지대에 정착한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하며 철기시대는 분명히 이 일로부터 도래했다.
-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
현재로서는 아주 빈약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키메르인(Cimmerian)들은 보통 그런 초기 민족이라 생각되는데, 그 정보의 대부분을 헤로도토스에게 의존하고 있다.
키메르인은 인도유럽 어족중에서 트라키아 하위 어족에 속했는데 대략 기원전 1000년 전부터 기원전 700년 사이에 남부 러시아 지역을 지배했다.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침입자였던 키메르인이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남부 러시아를 지배했다고 본다. 대부분의 피지배계층인 토착민들은 흑해의 북부 해안에서 지속적으로 문화를 발전시킨 사람들이라고 추정한다. 이러한 지배계층은 토착민들의 문화적 연속성을 파괴하지않고 그 이후 몇차례에 걸쳐서 교체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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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인
키메르인 다음으로는 스키타이인(Scythian)들이 이 지역을 차지했다. 그들은 키메르인을 정복하고 그들의 국가를 파괴했다. 이 새로운 침입자들은 비록 몽골적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중앙 아시아에서 도래했으며 이란어를 말하면서도 유럽어족에 속했다.
그들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말지 남부 러시아를 지배했다. 당대에 살았던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스키타이인들의 지배권은 다뉴브강으로부터 돈 강으로까지 그리고 흑해의 북부해안으로부터 내륙방향으로 20일 동안의 여행을 해야하는 지점으로 까지 확대 되었다. 스키타이인들이 세운 국가가 최대로 확대되었을때는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의 남쪽, 동쪽으로는 캅카스를 넘어서 소아시아에 이르었다.
스키타이인들은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황소가 끄는 텐트처럼 생긴 마차에서 생활했으며 식량으로 삼기도 했던 말의 숫자로서 그들의 재산을 평가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동성이 탁월한 경기병 부대를 구성했는데 그 무장은 안장을 포함한 활과 화살, 단검등을 사용해서 전투에 임했다. 기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치고 빠지는 전술에 기초한 그들의 전술은 아주 효과적이여서 당대 강력했던 이란계통의 국가인 페르시아인들도 자신들의 영토에서 스키타이인들을 몰아내지 못할 정도 였다. 스키타이인들은 남부 러시아에서 강한 군사국가를 수립했으며 최소 몇세기에 이르는 상당기간 동안 이 지역을 안정시켰다. 스키타이인들이 이 지역을 통치하는 동안 토착문화는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유입등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발전하고 풍요로워 졌다. 특히 스키타이인 특유의 유목민적 성격과 목축 중심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흑해 북부의 스텝지대에서는 농업이 계속해서 번성했다. 일반적인 관행에 따라 그 지역의 모든 주민들을 스키타이인이라고 불렀던 헤로도토스조차 스키타이인을 두 부류로 나누어 ‘왕족 스키타이인’과 ‘경작 스키타이인’으로 구분했다.
몇세기 가까이 남부 러시아를 지배하던 스키타이인들도 결국 다른 이민족에 의해서 남부 러시아를 내어주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출신이면서 이란어를 말하던 또 다른 유목민인 사르마티아인(Sarmaitian)들에게 남부 러시아를 내어주게 되면서 스키타이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남부 러시아를 새롭게 통치하게된 사르마티아인들은 몇가지 특징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문화는 스키타이인들과 유사했다. 스키타이인이 경기병을 중심으로한 병력운용이 전술의 핵심이라면 사르마티아인들은 등자와 갑옷, 창과 장검을 이용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사르마티아인들은 새로운 지배자로서 자신들의 새로운 경제와 문화를 맞추어가는데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원후 1세기에 저술 활동을 했던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이런 연속성을 언급하면서 남부 러시아의 스텝지대를 관통하던 동서교역로가 사르마티아인들의 지배하에서 여전히 활발히 통교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서술 하였따.
사르마티아인들은 몇 개의 부족으로 나뉘었는데 그중 세력이 가장 강한 부족은 알란족(Alans)이었다. 오늘날의 캅카스 중부에 살고있는 오세티야인(Ossetian)들은 알란족의 직계후손이다. 남부 러시아에 대한 사르마티아인들의 지배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후 3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 스키타이-사르마티아 시기의 문화
흑해의 북부해안과 러시아의 스텝지대에서 그리스 및 이란계 문화가 발전한 것은 스키타이-사르마티아 시기였다. 이란적인 요소는 우선 스키타이인들ㅇ과 사르마티아인들 스스로에 의해서 대변되었다. 그들은 거대하고 지속적인 군사 국가를 세웠는데 이는 곧 그 지역에 대한 정치적 골자를 제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과 관습, 종교와 문양을 가져왔다. 풍요로운 그리스 문명은 주로 그리스 식민지를 통해서 전해졌다. 흑해 어업을 근거지로 삼아 발전해온 이 식민지들은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성장해서 번영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런 그리스 식민지로는 크림반도내의 체르소네수스, 돈강 하구에 있는 타나이스, 그리고 아조프해를 흑해와 연결시켜주며 크림반도와 캅카스 사이에 있는 케르치 해협의 양쪽편에 있는 판티카파이움과 파나고리아 등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다양한 교역에 종사했지만, 특히 남부 러시아의 곡물을 그리스 세계로 수입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이란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수 세기 동안 이웃하여 생활하며 일했다. 스키타이인들과 사르마티아인들은 남부 러시아의 그리스인 식민시들을 결코 파괴하려 한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적극적인 교역관계를 맺고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통혼과 서로에 대한 동질화가 빠르게 진척되었다. 고대 남부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이란 문화의 번영은 에르미타시 박물관 또는 모스크바 역사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트족 병사
- 새로운 침입자
흑해 북쪽의 스텝지역에 대한 사르마티아 인들의 지배는 고트족(Goths)에 의해 종식되었다.
북에서 내려온 이 게르만 계통의 침입자들은 원래는 발트지역에서 살다가 남동쪽을 향해 이주한 것이다. 이들은 남부 러시아에서 동고트와 서고트로 나뉘었고, 이후 동고트족은 흑해부터 발트해에 이르는 대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200년에서 370년까지 지속되었던 러시아의 고트족 시기는 아시아에서 새롭게 등장한 훈족(Huns)에 의해 갑자기 종식되었다. 게다가 고트족이 훌륭한 군인이자 선원임은 입증되었지만 문화적인면에서는 남부 러시아의 문화보다 상당부분 뒤쳐져 있었기에 이들이 남부 러시아 문화에 기여한 바는 극히 미미하다.
훈족의 이동경로
370년 무렵에 고트족을 급습해서 분쇄한 훈족은 중앙 아시아로부터 남부 러시아에 이르는 초원길을 이용하여 대규모로 이동해왔다. 훈족은 유럽역사에 등장했을 당시 놀라울 정도로 잡다한 집단이었다. 아주 신뢰할 만한 증거에 따르면 그들은 투르크어를 사용하였고 몽골족과 우그리아족의 파견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유럽을 휩쓸 때 역시 자신들이 정복했던 지역에서 징병을 실시해서 다양한 게르만인과 이란인을 동원했다.
훈족은 남부 러시아에 온 민족들 중에 가장 원시적인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추진력과 군사적 용맹성을 갖추었다. 그들은 남부 러시아를 정복하고 유럽 역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훈족은 451년 프랑스 깊숙한 곳에 있는 샬롱의 전투에서 패배를 한 이후에도 이탈리아를 침략했다. 그러나 453년에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조직력이 빈약했던 훈족 국가는 붕괴되었다.
다음으로 남부 러시아를 침입한 부족은 아시아계인 아바르족(Avars)족이었다. 558년에 침입한 그들이 세운 국가는 러시아에서 약 1세기, 그리고 도합 250년 이상 존속되었는데 마지막에는 흔적도 없이 갑자기 해체 되었다. 정착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던 유목국가의 예정된 최후이기도 했다. 아바르족은 전성기때 러시아 동부로부터 다뉴브 평원에 이르는 전 지역을 지배했는데, 다뉴브 평원에 수도를 건설하고 통제권을 상실한 이후에도 그곳에 남아있었다. 아바르족의 군대는 샤를마뉴와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비잔티움을 위협하는 세력이기도 했다.
7세기에는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다. 새로운 세력인 하자르국은 볼가강 하류와 북캅카스 그리고 남동부 스텝지대 전반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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