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본사 - 고분시대 (고훈시대)

TimeMap Project

by 에이구몬 2018. 5. 9. 15:30

본문

반응형


오사카부 사카이시의 다이센 고분. 전방후원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ile:NintokuTomb.jpg

 

고훈시대 - 古墳時代

고훈시대(일본어: 古墳時代 고훈지다이)는 일본의 역사 구분으로, 3세기 중반부터 7세기 말까지의 약 400년을 가리킨다. 또는 아스카 시대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3세기 이후 도래인의 유입은 드물어지다가, 3세기 후반부터 호족의 연합정권인 야마토 조정이 일본 통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지배자의 권위의 상징으로서 각지에 고분(고훈)이 축조되었다. 이러한 고분은 시신을 안치하기위한 석실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덤 주위에 호를 둘러쳐 놓은 것도 있다. 이때 대륙과 한반도에서 산업기술과 한자를 수입하여 고훈 문화가 성립되었다.

 

고분의 형태

우선적으로 용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전방후원분이나 전방후방분등의 용어 개념을 먼저 성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기본적인 고분의 형태로는 원분과 방분이 있다. 원분은 원형 의 형태로 둘러 쌓은 형태의 고분이다. 방분은 사각형의 피라미드 형태의 고분이다.이 두가지 형태를 가지고 어떤 형태의 고분을 앞에 또는 뒤에 두느냐에 따라 고분의 이름을 결정짓는다.

 

원분

 

방분

 


전방후방분 - (앞에는 방분 뒤에는 원분)

전방후방분 - (앞 뒤 모두 방분)

 

전방후방분의 형태인 고분이 남아 있으나 고분시대에 대규모 고분은 거의 모두 전방후원분이어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분형태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전방후원분을 중심으로 고분의 형태와 내부구조, 부장품등의 변화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 세가지 시기로 나누고 있다.

 

고분시대의 세부시기

전기 - 4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전방후원분이 등장한 시기이다. 앞쪽의 방분과 뒤쪽의 원분중 중심이 되는 시설은 뒤쪽의 원분으로 여기에 석실을 만들어서 시신을 안치시켰다. 부장품으로는 옥으로 만든 장신구와 동검, 농기구와 무기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부장품으로 위 사진인 삼각연신수경으로 불리는 구리거울이 포함되었다. 삼각연신수경은 거울의 가장자리에 삼각형 무늬가 있고, 또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선과 동물을 새긴 문양을 가져 붙인 이름인데 고분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고분에 다수 부장되었다.

이 거울에는 야마타이국의 히미코여왕이 중국 위에 사자를 보낸 경초 3년(239년) 또는 그 다음해인 정시 원년(240년)등 위나라의 연호가 새겨져 있어 히미코 여왕이 위나라 황제에게서 받은 구리거울 100개중 한 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대륙에서는 삼각연신수경이 전혀 발견되고 있지않아 모방품 또는 복제품등으로 견해도 있다. 이 구리거울들은 긴키지방을 중심으로 각지에 분포되어 있어 야마토 정권이 자신들에게 복속하는 지방세력에게 하사한 하나의 위세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기 - 이 시기가 되면 전방후원분의 규모가 대형화 되고 무덤 주위에 한두겹의 호를 두르게 된다 . 중기의 특징적 현상으로는 부장품이 주술적 의미를 뜻하는 물건들 보다는 무기류가 점하는 비율이 높아져서 피장자의 성격이 군사 지도자 내지는 정치 지도자의 성격이 강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기 - 후기의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는 한반도 고분 문화의 영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횡혈식 석실과 부장품에 스에키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스에키는 가야식 토기로 가야인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하면서 제조기법이 전해져 만들어진 것이다. 후기에는 대형화 되었던 고분들이 더 이상 대형화 되지 않고 간소해지며 이는 야마토 정권의 중심세력이 주변의 호족들을 완전히 제압하여 중앙 집권적 면모를 가지게 되는 단초로 여겨진다. 또한 석실 내부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사신도 등 고구려 계통의 벽화가 그려진 점 또한 특징이다.

 

 

 

정치

3세기 중반부터 6세기 말까지는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이 북쪽으로는 도호쿠 지방에서 남쪽으로는 큐슈지방 남부까지 계속 만들어져 왔기 때문에 전방후원분의 세기라고도 말한다. 전방후원분은 야마토 조정이 통일정권으로서 확립되어가는 중에, 각지의 호족에게 허가한 형식이라고 여겨진다. 3세기 후반부터 나라 분지에서 왕의 무덤으로 보이는 전대보다 각별히 규모가 큰 전방후원분이 출현하고, 4세기 초기에는 오사카 평야에서 거대고분이 만들어졌으며, 4세기 말기 무렵에는 키나이(畿内)의 일부 지방에서 선진적인 고분군이 출현했다. 계속되는 5세기 중반에는 각지에 거대고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6세기 말기에는 일본 각지에서 거의 시간적으로 동일하게 전방후원분이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야마토 정권이 확립에 따라 중앙・지방의 통치조직이 완성되어 더욱 강력한 정권으로 성장하였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전방후원분이 만들어지지 않게 된 7세기는 방분(方墳)·원분(円墳)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오오키미(大王)의 무덤은 특별히 팔각분(八角墳)으로 만들어졌다. 7세기 이후를 종말기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국가의 성립부터 고찰해보면, 전기・중기의 고대국가의 형성기를 지나, 후기에서 종말기에 걸쳐서 일본의 고대국가가 성립되었다고 여겨진다.

 

사회

4세기 말에서 6세기 중기까지 도래인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가 4세기 후반부터 남진 정책으로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가야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면서 일본 열도로 피난 오는 사람들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일본 왕실은 백제를 비롯하여 백제 등지에서 피난 오는 도래 기술자로부터 유용한 대륙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위해 백제가 고구려에 대적할 수 있도록 전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일본 왕실이 도래인들에게 각종 특혜를 주면서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도래 씨족이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문화

이 시기에 중국과 한반도에서 문자와 유교가 전해졌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토사기(土師器)와 스에기(須惠器)를 사용했다. 청동기도 대륙에서 들어왔지만, 고대 오리엔트 지역과 달라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와 격차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할 기회가 없었고, 성능이 뛰어난 철이 대신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청동기는 동탁(銅鐸)과 같은 제사, 종교용으로만 쓰이게 되었다.

 

고훈시대는 고대 왕권이 확립되는 시기로서 각 세력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고대국가로의 진전이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728x90
반응형

'TimeMap Projec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사 - 아스카문화  (0) 2018.05.12
일본사 - 히미코 여왕과 야마타이국  (0) 2018.05.10
일본사 - 철기보급의 확대  (0) 2018.05.08
일본사 - 야요이 시대  (1) 2018.05.08
일본사 - 죠몬시대  (0) 2018.05.07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