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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 야요이 시대

TimeMap Project

by 에이구몬 2018. 5. 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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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시대(일본어: 弥生時代;미생시대)는, 홋카이도,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열도의 시대구분 중 하나이며, 조몬시대에 후에 이어지며, 고훈시대의 전에 해당하는 약 기원전 3세기 부터 3세기 중반까지에 해당하는 시대의 명칭이다.

 

조몬 시대에 시베리아, 한반도, 폴리네시아로부터 일본으로 들어온 도래인들은 기원전 3세기 경부터 일본 열도 각지, 특히 유래지에서 가까운 규슈 지역에 씨족 단위의 촌락을 형성하고 중국을 비롯한 대륙 지역의 문화를 일본으로 전래시켰다. 이 시대의 문화를 야요이 문화라고 한다. 야요이 문화는 금속기의 병용(倂用)과 수도경작(水稻耕作)을 특징으로 하며, 곡물 축적과 관개용수 통제 등이 원인이 되어 계급이 분화하고, 각지에 사제자(司祭者)를 왕으로 한 소국가(小國家)가 성립되었다. 기원전 5세기 중반에 대륙에서 큐슈 북부로 수전경작기술을 중심으로 한 생활 체계가 전해지고, 큐슈, 시코쿠, 혼슈로 전해졌다. 초기의 논은 후쿠오카 시 하카타 구에 있는 이타즈케 유적과 사가현 가라쓰 시의 나바타케 유적과 같이 큐슈 북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야요이 시대의 시작이다. 조몬 시대 시대후기부터, 대규모 관개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밭에 심는 벼의 재배(陸稻耕作)은 있었지만, 야요이(彌生)시대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관개 시설을 사용하는 경작이 도입되었다(水稻耕作).

 

야요이 시대에는 특히 수도경작(水稻耕作)가 도입되어 곡물의 비축이 가능해지면서 잉여작물의 생산과 축적이 발달하여, 이것이 부(富)에 연결되어 가지는 것과 가지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서 빈부의 차와 상하관계가 생겨났다. 또한 대규모 관개 시설을 사용한다 벼농사 기술의 도입에 의해 개간과 농업용수의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어 집단의 대형화가 진행되었다. 대형화된 집단 사이에서는 부와 경작지, 수리권(水利権) 등을 둘러싸고 싸움이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싸움을 통한 집단의 통합, 상하관계가 진전된 결과 각지의 조그만 나라가 생기고, 1세기 중반에 한위노국왕의 금인(漢委奴國王印)을 후한으로부터 하사받고, 3세기 중엽에 야마타이코쿠의 여왕 히미코가 위에 조공을 바치고 야마토의 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금인을 받게 되었다. 덧붙여 이 무렵 이후 일본은 한반도와 대륙에서 왜라고 불렀다.

 

[야요이]라는 명칭은 1884년 발견지인 도쿄 시 분쿄 구 야요이 초의 패총에서 발견된 토기에 연유해 야요이식 토기로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그 후 도시화의 진행으로 정확한 발견지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엔 야요이식 토기를 사용한 시대라는 의미에서 〈야요이식 시대〉라고 부르고, 그 후 ‘식’을 생략하는 호칭이 일반화되었다. 야요이 시대라는 명칭의 기원이 된 야요이에서 출토된 토기들이 현재의 토기편년 상에서 고훈시대 전기에 해당한다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도래인은 농경민족이었고 때문에 일본에 수전농경문화가 전파된 계기는 도래인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수도경작은 기원전 1200년경부터 한반도에서 사용되었다. 기존에는 무거동과 마전리 유적을 통해 기원전 7~5세기를 최상한 연대로 보았으나, 2015년 5월 세종시에서 약 4000평 가량의 논농사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12~1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세기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특히, 큐슈)로 사람들이 이동하였는데 이들 고대 한국인(야요이인)들이 일본에 대규모 관개 시설을 사용하는 경작(水稻耕作)을 전수해주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또한,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일본 각지의 초기 논의 구조 형태와 농기구들, 토기, 주거 형태와 부락 등을 통해 그러한 주장이 고고학적으로도 규명되고 있다. 한반도 벼농사의 도래에 관해 교토대학 사학과의 가도와키 데이지(門脇禎二) 교수는 토기의 고고학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문화 전파 방향

당시의 초보적인 항해술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손쉽게 갈 수 있는 지역이 북 규슈 지역이기 때문에 위 그림에서 보듯이 한반도 남부에서 쓰시마 섬을 거쳐 규슈로 가는 길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 뿐 아니라 중국사서에서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길은 야요이 시대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일본이 한반도에서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다.

이타즈케에서 시작한 벼농사와 한민족으로 부터 전수받은 청동기를 특징으로 한 야요이 문화는 세토 내해를 통해 동쪽으로 전해졌는데, 현재 후쿠오카와 가라쓰, 요시노가리, 그리고 세토 내해의 오카야마, 킨기 지방의 나라 분지에 전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쿠니들이 세워졌다. 수도경작은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주부 지방에 보급되었고, 1세기 전까지 간토와 도호쿠 남부에 전파되었다. 최종적으로 3세기까지 도호쿠 북부까지 벼농사가 전파됨으로써 홋카이도를 제외한 고대 일본은 3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농경 생활이 행해지기 시작한다.

도래인이 오기 전 동일본 지역에 분포하던 죠몬인들은 서서히 동쪽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들은 여전히 목기, 석기를 도구로 하여 수렵,어로, 채집을 등으로 삶을 영위하였다. 

야요이 문화는 서 일본 지역에 있었기에 큰 마찰은 없었으나 보다 선진적인 야요이 문화에 의해 (농사에 의해) 죠몬인들은 홋카이도까지 밀려나 아이누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일본에서 발견되는 한반도내 유물,유적과 동일한 형태의 유물, 유적

농경문화와 더불어 직물과 다양한 기술도 전해졌다. 이 또한 주로 한반도 남부로부터 집단적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였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한반도 남부의 것과 같은 형의 고인돌이 북큐슈에서 자주 발견되고, 서일본의 야요이시대 전기의 고인돌에서 발견되는 인골의 평균신장이 죠몬시대 인골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한반도 남부인의 신장에 가깝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야요이 문화의 유물 유적을 통해 한반도와 여러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데 토기와 취락, 매장풍습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야요이 토기

야요기 토기가 한반도의 토기에 영향을 받은것인지 아니면 앞선 시기의 죠몬토기에 영향을 받은것인지는 아직도 논란중이다.

이는 야요이 문화가 순전히 한반도에서 전래된것인지 아니면 한반도 전래문화와 토착문화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문화인지에 대한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학자가 후자의 주장을 기술하고 있으며 동탁을 예로 들면서 죠몬시대부터 이어온 일본 고유의 문화가 도래인의 쌀과 금속기 문화와 만나 야요이 문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탁은 청동제 종으로서 중국 한국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유물이다. 

또한 야요이 시대에 들어서면서 환호집락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환호집락 유적  - 원형의 울타리 자리가 눈에 띈다

환호집락이란 집락주변에 방호시설인 호를 두르고 이를 통해 집락을 보호하는 형태의 집락을 말한다. 죠몬시대와는 달리 야요이 시대에 들어서며 집락이 거대화 되기 시작했고 30개 이상의 주거지와 창고들로 구성된 집락유적이 각지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환호집락유적은 농경사회로의 전환과 그에따른 이웃집단간의 분쟁에서 나타났다고 보여진다. 생산력의 증대와 인구증가에 따른 필수적인 타 세력과의 갈등은 이러한 환호집락을 나타나게 만든것이다. 이런 현상 또한 야요이 시대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환호집락은 한반도에서도 발견되는데 울산의 검단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창원 남산 유적등에서 다수의 환호집락이 발견된다. 이를 통해 한반도 문화와 야요이 문화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부여 송국리 유적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부여 송국리 유적 - 동일한 형태의 환호집락을 보여준다. 

환호집락의 형태로 나타난 일본의 지역세력들은 점차 합쳐져 쿠니(國)라고 하는 소국 내지는 지역 공동체로 변모해간다. 이러한 소국의 분립 상황은 한서 지리지나 동이전 등 중국 역사서에서도 나타나는데 한서 지리지에는 "낙랑해중에 왜인이 있어 나뉘어져 100국이 되며 세시에 와 헌견하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동이전에는 왜의 노국 사자가 낙양에 와 광무제로부터 인수를 받았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왜 노국왕이 후한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이를 통해 중국의 선진문물과 정치적 우월성을 얻으므로서 타 세력을 견제하고 우월적 위치에 존재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5세기에 걸쳐 여러 소국들이 분립하던 야요이 시대를 거쳐 고대 권력이 나타나는 시대로의 이행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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