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義篇
유가(儒家)에 관한 책을 보면, 흔히 의(義)를 의(宜)로 보아 마땅함을 뜻하는 단어로도 보았다. 즉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의(義)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의(義)는 한편으로 가족간에 맺어지는 끈끈한 유대 관계를 뜻하는 말로도 통하였다. 아랫 글에서도 이런 의미로 가족간의 의(義)를 강조하고 있다. 각종 패륜적인 사건이 잦아지는 요즘 한번쯤 되새겨 볼만한 글자이다. 바로 의(義)란 글자를!
顔氏家訓曰, 夫有人民而後有夫婦, 有夫婦而後有父子, 有父子而後有兄弟, 一家之親, 此三者而已矣。自玆以往, 至于九族, 皆本於三親焉。故, 於人倫, 爲重也, 不可無篤。
안씨 가훈에 이르기를, 대저 백성이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뒤에 형제가 있나니, 일가의 친함은 이 세 가지일 뿐이니라. 이로부터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삼친(三親)에 근본을 두느니라. 그러므로 인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되니 돈독함이 없어서는 안되느니라.
(字義) ○夫는 대저 부. 대개 말을 시작하거나, 문단을 바꿀 때 발어사(發語詞)로 쓰인다. 즉, 뜻이 있는 글자가 아니고, 말을 꺼내거나 또는 문단을 바꿀 때 그냥 길게 소리를 빼어 읽는 것이다. ○~而後+술어~: “~하고 난 뒤에 ~한다”는 뜻으로 잘 쓰이는 구문이다. ○~而已矣에서 而는 앞 글을 뒷 글에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已는 그칠 이. 의역하면, “뿐 이, 따름 이”의 뜻이고, 矣는 단정적으로 말을 마칠 때 쓰는 어조사이다. “~而已矣”는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일 뿐이다. ~일 따름이다”의 뜻이다. ○自玆以往에서 自는 “~로 부터”의 뜻이고, 玆는 이 자. 以往은 以來와 같다. ○本은 여기서는 술어로 쓰였다. ○焉(언)은 술어와 붙어서(술어+焉) 그 대상을(목적어를) 내포하기도 하고, 또는 단순히 처소격의 의미를 갖는 종결형 어조사로 쓰인다. 특히 문장 가운데에 처소격 어조사인 於가 있을 때는 이 焉으로 말을 끝맺기 마련이다. ○不可+술어: ~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할 수 없다. ~해서는 안된다. ○구족(九族)이란 고조, 증조, 조부, 부, 자기, 아들, 손자, 증손, 현손의 직계친을 말한다. 삼친(三親)은 위 글에도 나오듯이 부부, 부자, 형제를 뜻한다.
莊子曰, 兄弟爲手足, 夫婦爲衣服, 衣服破時更得新, 手足斷處難可續。
장자가 말하였다. 형제는 수족이 되는 것이요, 부부는 의복이 되는 것이다. 의복이 떨어졌을 시에는 다시 새롭게 할 수 있으나, 수족이 짤라진 곳은 잇기가 어려우니라.
(字義) ○爲는 될 위. ○破는 깨뜨릴 파. ○술어+時: ~할 때.(when~) ○更은 부사로, 다시 갱. ○得新은 “새롭게 할 수 있다”(헤진 곳을 기워서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得다음에 술어가 오면 “~할 수 있다”의 뜻이다. 만약 “得新”을 “새것을 얻을 수 있다”로 번역한다면 어법상으로도 옳지 못하고, 문맥상으로도 호응이 좋지 못하다. ○難+술어:~하기 어렵다. ○續은 이을 속. 繼續(계속), 續篇(속편),
蘇東坡云, 富不親兮貧不疎, 此是人間大丈夫, 富則進兮貧則退, 此是人間眞小輩。
소동파가 말하였다. 상대가 부유하다고 해서 친한 척 하지 않고, 상대가 가난하다고 해서 소원하게 하지 않는 것! 이는 바로 인간 세상의 대장부라 할 것이요, 상대가 부유하면 나아가고, 상대가 가난하면 물러나는 것! 이는 바로 인간 세상의 진짜 소인배라 할 것이다.
(字義) ○兮는 주로 두 글귀가 댓구를 이룰 때 쓰이는 어조사이다. ○“此是~”에서 此는 지시대명사로서 주어로 쓰였고, 是는 “~이다”의 뜻으로 술어이다. 윗글에서도 此라는 주어는 쓸 필요가 그다지 없다. 즉, 此가 없어도 주어는 문맥상 분명하므로 생략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왜 썼는가? 7언의 댓구문(4.3 4.3)을 맞추기 위해서 此라는 주어를 쓴 것이다. ○人間은 “인간” 즉,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人生世間의 줄임말로 “사람 사는 세상”을 뜻하는 단어이다. ○輩는 무리 배. 不良輩(불량배), 輩出(배출).
安義篇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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