繼善篇
계선편은 명심보감의 첫번째 편이다. 계선(繼善..선을 잇는다?)이란 말은 아마도 사람은 착한 본성을 타고난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전제로 한 듯하다. 즉 사람은 날 때부터 선한 본성이 있으며 이러한 본성을 교육을 통해서 악에 물들이지 않고 계속 지켜가자는 뜻에서 지은 편명(篇名)처럼 느껴진다. 대학(大學)의 첫머리에서도 “대학의 도는 밝게 타고난 덕(善)을 더 밝히는데 있다”(大學之道,在明明德)라고 하였으니, 선한 본성을 이어간다는 것은 배움의 첫 목표로서 명심보감의 첫번째 편을 이룰 만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편에서는 선악(善惡)에 관한 글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럼 과연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아마도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천성적으로 선악을 구분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爲不善者, 天報之以禍。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善)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福)으로 갚고, 불선(不善)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화(禍)로서 갚느니라.
(字義) ○子는 남자에 대한 통칭(通稱)이다. 특히 子라고만 할 때는 주지하다시피 공자(孔子)를 지칭한다. ○한문의 경우, 댓구를 이루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도 善과 不善, 福과 禍의 대비로 두 문장이 댓구를 이룬다. ○爲는 타동사로 “~을 하다. ~을 행하다”의 뜻. ○“~~者”는 “~하는 사람, ~하는 것”의 뜻으로 문장내에서 다른 말 뒤에 붙어서 명사구를 형성하여 의미의 한 단락을 이룬다. 따라서 끊어 읽는 구두점이 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는 “爲善者”가 명사구로 의미의 한 단락을 이룬다. ○報는 갚을 보. 報恩(보은), 報復(보복), 報答(보답)
●之의 쓰임새에 대해서...
之는 술어로는 “~에 가다” (갈 지)의 뜻이고, 어조사로는 우리말의 관형격 조사인 “~의”의 뜻이 있다. 어조사로서 또 하나의 쓰임새는 목적어․대명사(지시대명사)로서의 之를 들 수 있다. 한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가 바로 이 “之”자(字)이지만 다소 그 쓰임새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흔히 之를 목적어․대명사로 보아 “이것을,” “그것을”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만으로는 之의 쓰임새를 온전히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만약 之가 “목적어․대명사”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진다면, 之앞에는 반드시 타동사만 와야 할 것이며, 또한 대명사로서 之가 받는 목적어가 문장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之는 타동사는 물론이고, 자동사 뒤에도 붙어서 두루 쓰이는 글자이며, 또한 문장내에 대명사로서 之가 받는 목적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즉, 之를 목적어․대명사라는 명칭으로 불러서는 之의 쓰임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오역(誤譯)의 가능성도 상당히 많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之를 “어조사”라는 다소 애매한 명칭으로 이 之자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之는 목적어․대명사라기 보다는 문장의 어감(語感)이나, 어기(語氣), 어세(語勢) 등을 위해서 더 많이 쓰인 글자이다. 즉, 之자는 무엇을 지칭하기 위한 대명사라기 보다는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유지하고, 어조(語調)를 고르기 위한 글자로서의 기능이 더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之자는 此(이것을), 是(이것을) 등과 같은 글자처럼 그 지시성(指示性)이 강한 글자가 아니며, 다만 문장의 안정감과 어조 등을 위해서 붙여준 글자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말로 “이것을,” “그것을” 이라고 하여 지시대명사로 번역될 성격의 글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 선조들께서 옮겨 놓은 각종 언해본(諺解本) 등을 살펴 보면 之자를 “이것을,” “그것을”이라고 해석한 경우가 절대로 없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之자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명심보감에서는 之를 대명사․목적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옛 전례대로 “어조사”라는 명칭으로 부를 것이다. 이 之자의 쓰임새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한문의 독특한 어감이나 문장 형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부록으로 之자의 쓰임새에 대해 별도로 자세히 설명하였으니 참조바란다.
漢昭烈將終, 勅後主曰,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한(漢)나라 소열제(昭烈帝)가 장차 죽음에 이르러, 후주(後主)를 조칙(操飭)하여 이르셨다. 악(惡)이 적다고 하여 해서는 안되며, 선(善)이 적다고 하여 안해서는 안되느니라.
(字義) ○昭烈은 촉한(蜀漢)의 유비(劉備)가 황제가 된 후의 칭호이다. ○將은 “장차 장”으로 미래 시제를 나타낸다. 將次(장차), 將來(장래). ○終은 “마칠 종”으로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臨終(임종). ○勅(칙)은 “조칙(操飭)하다”는 의미로, 경계하여 타이른다는 뜻이다. 또는 조칙(詔勅)을 내린다는 의미도 있으므로, 여기서는 두가지로 모두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술어+사람+曰~”의 구문은 잘 쓰이는 관용구이니 알아둘 필요가 있다. ○後主는 글자 의미로는 “다음 임금”을 뜻한다.(主가 임금이란 뜻) 여기서는 유비의 아들을 의미한다. ○이 문장 역시 댓구문을 이룬다. 특히 글자수까지도 대칭을 이루게 하여 마지막 줄에 “不爲之”라 하지 않았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하나 알아둘 점은 일반적으로 어조사 之는 “不+술어+之”의 형태로는 대체로 쓰이지 않는다(쓰이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쓰이지 않음). “不+술어+之”의 구문은 어세(語勢)가 좋지 못하고 어조(語調)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한 어감을 주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之를 쓰지 않는 것이다. ○以는 주로 명사(구)의 앞 또는 뒤에 붙어서 “~로서”의 뜻이지만, 以뒤에 명사절을 받으면 “이유”를 나타낸다. 즉, “~하여서, ~이기 때문에”의 뜻이 된다. 이 문장에서도 “惡小”라는 명사절을 받아, “악이 적다는 이유로~, 악이 적기 때문에”의 뜻이 된다. ○勿은 금지사로 주로 문장 앞에 쓰인다. 즉 우리말로는 勿이 “爲之”에 걸리지만, 한문에서는 勿을 맨 앞으로 돌린다. ○“勿以~而~”구문은 마치 영어의 “not~because~”구문과 같다. 즉, “~하다고 해서 ~하지 않는다”의 뜻이다.
莊子曰, 一日不念善, 諸惡自皆起。
장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루라도 선(善)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모든 악(惡)이 스스로 다 일어나느니라.
(字義) ○2.3 2.3으로 끊어 읽는다. ○念(념)은 “~을 생각하다” ○諸는 모두 제. 주로 명사앞에 붙어서 “한정어”로 쓰인다. 諸君(제군), 諸國(제국). ○皆는 모두 개. 주로 “주격 대명사”로 쓰인다.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태공께서 말씀하셨다. 선한 것 보기를 목 마르듯이(목이 말라 물을 구하듯이) 하고, 악한 것 듣기를 귀머거리처럼 하라. 또 이르셨다. 선한 일은 모름지기 탐할 것이요, 악한 일은 즐기지 말 것이다.
(字義) ○渴은 목마를 갈. 渴症(갈증), 渴望(갈망). ○聾은 귀머거리 롱. 聾啞(농아). ○須는 모름지기 수. “모름지기 ~해야 한다”의 뜻. ○莫(막)은 금지사. ○한문의 어순을 “술목관계”라 하여 술어 다음에 목적어가 온다고 한다. 이는 한 음절의 술어와 한 음절의 목적어가 있을 때의 관계이다. 예를 들면 登山, 守節, 退社 등등의 경우가 있다. 그러나 두 음절의 목적어일 때는 이러한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즉, 두 음절의 목적어일 때는 강조하기 위해 목적어를 술어보다 앞에 쓰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위의 문장에서도 見善, 聞惡은 술목관계이지만, 善事, 惡事는 술어 앞에다 쓰고 있다. 단, 목적절을 받을 때는 영어의 어순과 마찬가지로 “술어+목적절”의 어순이 된다.
馬援曰, 終身行善, 善猶不足, 一日行惡, 惡自有餘。
마원이 말하였다. 종신토록 선을 행해도 선은 오히려 부족하고, 하루만 악을 행해도 악은 절로 남음이 있느니라.
(字義) ○馬援은 후한(後漢)때 사람. ○終身(종신)은 “몸을 마친다. 죽는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관용구이다. 終身刑(종신형), 終身雇用(종신고용). ○猶는 ①오히려 유. ②같을(如) 유. 여기서는 부사로 ①의 뜻이다. ○餘는 남을 여. 餘暇(여가), 餘力(여력).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讀,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
사마온 공이 말씀하셨다. 금을 쌓아서(以) 자손에게 물려줘도 자손이 반드시 능히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요, 책을 쌓아서(以) 자손에게 물려줘도 반드시 자손이 능히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남모르는 곳에 음덕(陰德)을 쌓음으로써(以), 자손의 계책으로(본보기로) 삼는(爲) 것만 못하느니라.
(字義) ○司馬溫은 북송(北宋)의 명신(名臣)이다. ○公은 존칭. ○以는 명사(구)를 앞 또는 뒤에서 받아 “~로서”의 뜻이고, 명사절 다음에 以가 오면 “~하므로써”의 뜻으로 굳이 우리말로 해석할 것도 없다. 그리고 以다음에 명사절이 오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유”를 나타내어 “~하기 때문에, ~하여서”의 뜻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以+명사(구), 명사(구)+以”는 “~로서”의 뜻으로 자격을 나타내고, “명사절+以”는 “~하므로써, ~하여서”의 뜻으로 앞문장을 뒷문장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以+명사절”은 “~하기에, ~하므로, ~하기 때문에” 등등의 뜻으로 “이유”를 나타낸다. ○遺는 끼칠 유, 줄 유, 남길 유. ○未必은 부분 부정으로 “반드시 ~하는 것은 아니다”의 뜻. ○盡은 ①(술어)다할 진. ②(부사 또는 대명사)다 진. 모두 진. 여기서는 부사로 ②의 뜻이다. ②의 뜻으로 쓰일 때 盡은 부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술어 앞에서 쓰인다. 즉, 盡+명사: ~을 다하다. ①의 뜻이고, 盡+술어: 모두 ~하다. 다 ~하다. ②의 뜻으로 부사 또는 대명사이다. ○“不如~”는 “~만 못하다. 하는 것만 못하다”의 뜻. 不如+명사(구): ~만 못하다. ~만 같지 않다. 不如+서술문: ~하는 것만 못하다. ○冥은 어두울 명. ○爲는 ①할 위, ②위할 위, ③될 위, ④~로 삼다. ~로 여기다. ~로 생각하다. 등등 주로 4가지 뜻이 있고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④의 뜻으로 쓰일 때는 또한 일반적으로 以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즉, “以A爲B”는 A로서 B로 여기다. 다시말하면, “A를 B로 삼다. 여기다”의 뜻이다. ○마지막 문장의 “以爲子孫之計”에서 위의 해석과는 달리 “以爲”를 한 단어로 보아도 된다. 즉, 以爲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굳어져서 “~으로 여기다, ~으로 생각하다, ~으로 삼다”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以爲”는 한 단어로 쓰인다.
景行錄曰, 恩義廣施, 人生何處不相逢, 讐怨莫結, 路逢狹處難回避。
경행록에 이르기를, 은의(恩義)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디에 산들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와 원망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字義) ○이 문장 역시 대칭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파악하면 해석하기가 한결 쉽다. 4.4.3으로 끊어 읽는다. ○恩義는 목적어이지만 강조하기 위해 술어 앞에다 쓴다. 즉, 항상 술목관계에 따라 문장을 배열하는 것이 아니다. ○廣(광)은 부사로 쓰였다. 넓을 광. ○生은 “~에 살다” ○何가 붙는 말은 모두 의문문으로 해석한다. 무엇 하. 어찌 하. ○讐는 원수 수. ○狹은 좁을 협. ○難+술어~ : ~하기 어렵다. ○避는 피할 피.
莊子曰, 於我善者我亦善之, 於我惡者我亦善之, 我旣於人無惡, 人能於我無惡哉。
장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선한 사람에게 내가 또한 선하게 대하고, 내게 악한 자라도 내가 또한 선하게 대할지니라.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아니하였으면 남도 능히 내게 악함이 없을 것이니라.
(字義) ○者가 있는 문장은 者와 명사구를 이루는 문구를 찾아, 의미의 단락을 구분한다. 여기서는 “於我善者”가 하나의 명사구로 의미의 한 단락을 이룬다. ○善은 여기서 술어로 쓰였다. “~을 선하게 여기다. ~을 선하게 대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之는 대명사․목적어로 쓰이기 보다는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유지하고 어기(語氣), 어세(語勢) 등을 고르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다. 즉, 善다음에 之를 붙여 줌으로써 善을 술어가 되게 해주는 어감을 얻는 것이다. ○哉는 감탄형 종결 어조사.
東岳聖帝垂訓曰, 一日行善, 福雖未至, 禍自遠矣。一日行惡, 禍雖未至, 福自遠矣。行善之人, 如春園之草, 不見其長, 日有所增。行惡之人, 如磨刀之石, 不見其損, 日有所虧。
동악성제가 훈계를 내려 이르셨다. 하루 선(善)을 행해도 복(福)은 비록 아직 당장 이르지는 아니하나 화(禍)는 저절로 멀어지고, 하루 악을 행해도 화(禍)는 비록 아직 당장 이르지는 아니하나 복(福)은 저절로 멀어지느니라.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풀이 자라는 것을 보지는 못해도 날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바가 있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돌과 같아서 그것이(그 돌이) 닳아 없어짐을 보지는 못해도 날마다 조금씩 이지러지는 바가 있느니라.
(字義) ○東岳聖帝는 도가(道家)의 사람이다. ○垂는 (위에서 아래로) 드리울 수. ○雖는 비록 수. 주어는 雖앞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矣(의)는 평서문의 종결형 어조사. 주로 단정, 결과, 확정 등의 뜻을 내포하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때 쓰이는 종결형 어조사이다. 也도 똑같은 종결형 어조사이지만, 也에는 矣에서와 같은 단정, 결과, 확신의 뜻이 약하고 단순히 평서문의 종결을 나타낼 뿐이다. ○其는 주격 또는 소유격 대명사로 쓰인다. 여기서는 其가 春園之草를 받는 대명사이고 주격 또는 소유격으로 해석해 준다. 위에서는 주격으로 해석했다. ○日은 부사로 쓰였다. “날마다”의 뜻. ○有+A= A가 있다. ○磨는 갈 마. ○損은 덜 손 ○虧는 이지러질 휴.
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을 보기를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이 하고, 불선(不善) 보기를 끓는 물에 손을 넣는 것 같이 하라.
○見善如不及에서 之를 붙여 見善如不及之라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不+술어+之”와 같은 구문은 대체로 어세(語勢)가 좋지 못하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이지 않는 것이다.
繼善篇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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