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 - 차르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1812)
러시아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패한 뒤 동맹을 맺었으나 이는 결국 한계가 명확한 동맹이었다. 두 황제가 1807년에 틸지트에서 이룬 합의는 1808년에 에르푸르트에서 갱신되었으나 결국 양쪽 누구도 만족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군사적 패배로 인해 이를 어쩔수 없이 수용해야만 했으나, 나폴레옹의 대륙지배와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 특히 대륙봉쇄에 참가해야 한다는 조항에 분개했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는 러시아 내 섬유산업에 영국의 참여를 배제하므로써 러시아 제조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였으나 표트르 대제 시절 부터 계속해서 영국과 경제적 협력을 이루던 지주계급이나 수출업자들에게는 타격이 되었다.
게다가 나폴레옹의 부관들에게 러시아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상대이며 완벽한 대륙지배에 앞선 장애물로 인식되었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군사적 패배로 말미암아 복수하자는 목소리가 높았고, 끔찍한 혁명으로부터 등장한 나폴레옹은 적그리스도로까지 그려지기도 했다. 유럽 열강 사이의 전통적 경쟁관계와 식민지 확보에 관해서도 경쟁이 시작되자 양국 사이에 긴장과 위기가 증폭되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가 먼저 러시아에 대륙봉쇄에 참가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항의를 시행했다.
프랑스는 1809년 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러시아가 참전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참가한일과 대륙봉쇄에 대해서 철저히 지키지 않는 점을 항의했다. 그러자 러시아인들은 근동지역에서의 프랑스의 활발한 활동과 다뉴브강 유역에 공국들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항의했다. 게다가 프랑스가 1809년에 오스트리아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쇤부룬 조약을 체결하면서, 서부 갈리치아가 친프랑스 국가인 바르샤바 공국에 병합되자 러시아는 이를 실질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폴란드 분할로 러시아가 획득한 영토에 대해서 러시아의 지배권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이 중첩됨에 따라 나폴레옹은 1812년 6월 러시아 원정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포함해 동맹국, 위성국의 지지를 받고 침공을 시작했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투르크와 스웨덴, 영국의 동맹국을 확보했다. 프랑스군의 규모는 45만에서 60만 정도로 추산되며 러시아군과 카자크의 수는 약 20만 정도로 추산된다. 러시아군의 규모는 아무리 크게 잡아도 40만정도가 될 듯하다.
전쟁의 양상은 나폴레옹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나폴레옹이 침공을 시작하자 러시아 남부에 파견되어있던 투르크방면의 병력이 돌아오고, 프랑스의 보급선이 길어짐에 따라 프랑스군이 가지고 있던 수적인 이점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일찍 시작된 겨울과 예년과는 다른 낮은 기온의 기후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나폴레옹은 백년전 스웨덴의 칼 12세가 시행한 것과 같이 빌뉴스 - 비텝스크 - 스몰렌스크 라인을 따라서 러시아의 심장부인 모스코바로 진격했다. 러시아의 병력은 프랑스군을 당해낼 수 없었고, 스몰렌스크 전투를 비롯해 여러번의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패배를 당하면서도 프랑스군을 점차 소진시키는데는 성공했다. 게다가 명장 수보로프의 제자인 쿠투조프는 러시아군의 최고사령관이 되어 그해 9월 7일 모스크바 120KM 떨어진 보로디노에서 전투를 벌였다. 보로디노 전투는 매우 격렬하게 전개 되었는데, 프랑스군은 12만이 참전하여 약 2만 8천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러시아는 10만의 병력이 참전하여 4만의 사상자가 나온 대전투였다. 보로디노 전투의 결과 러시아는 패배하지는 않았으나 병력의 온존을 위해 모스크바를 버리고 후퇴하였다.
결국 모스크바는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고 나폴레옹은 9월 14일에 크렘린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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