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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고려의 멸망과 이성계, 조선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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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2. 2. 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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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고려의 멸망과 이성계, 조선의 등장

최영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반원정책을 추진하던 공민왕이 신돈의 실각 이후 환관에 의해 시해되자 정계의 실력자인 이인임은 재빨리 우왕을 즉위시키고 고려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공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우왕은 당시 나이 10세에 불과했으므로 고려의 실질적인 국정은 최영, 경복흥 등 고려의 무장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이들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에 맞서 싸우며 세력을 키운 자들이다. 이들이 무신정권 때 처럼 권력을 휘두른 것은 아니나 고려 조정의 핵심세력으로 떠올랐고,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은 이들이 집권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이인임은 그동안 공민왕이 추진해 오던 친명 외교정책을 버리고 단절되었던 원과의 외교관계를 새롭게 수립하고자 하였다. 당시 원은 명에게 밀려 북원을 새롭게 세운 상태였다. 이인임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가차없는 숙청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우왕 14년, 최영은 우왕과 협의하여 권력을 쥐고있던 임견미와 염흥방 일당을 숙청하고 이인임도 축출하였다. 당시 최영은 이성계와 협력하였다. 이들은 이인임 일파 축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개혁에 있어서는 입장이 달랐다. 이성계는 고려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권문세족을 제거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해야하는 입장을 고수한 한편, 최영은 자신 스스로가 권문세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온건한 개혁을 하자는 입장이었다. 또한 외교정책에서도 이성계는 친명파, 최영은 전통적 우방인 북원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그러던 중 명은 고려의 친원노선을 버릴 것을 요구하면서 원이 차지하였던 동녕부와 쌍성총관부 자리에 철령위를 설치해서 철령 이북 땅을 회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해왔다. 이에 최영은 북원 정벌로 명나라가 아직 제대로 고려에 신셩을 쓰지 못할 때에 요동을 정벌해야한다는 요동정벌론을 펼쳤다. 친명파이던 이성계는 이에 반대했지만, 최영과 우왕은 요동정벌을 강행하였다. 우군 도총사가 되어 요동정벌에 나선 이성계는 결국 압록강을 건너기 직전 위화도에서 좌군 도총사 조민수와 함께 개경으로 회군한다. 1388년 6월 개경을 점령한 이성계는 정치적 반대파인 최영을 귀양보내고 우왕도 강화도로 쫓아버렸다. 회군 이후 군사력과 조정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성계는 이때 이미 신진사대부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국정을 조율했던 것으로 보인다. 

포은 정몽주

 

이성계는 우왕을 폐위한 뒤 고려 왕실에서 제3의 중립적 인물을 선택해 옹립하려했으나 고려왕실에 충성하던 조민수와 이색 등 일부 인물의 반대에 밀려 우왕의 아들 창왕을 1388년에 옹립하였다. 그러나 좌군 도총사이자 위화도 회군을 함께한 인물인 조민수는 이성계파의 탄핵으로 곧 실각하고 이성계 일파가 완전히 실권을 장악했다. 당시 이성계 일파는 조준 등의 급진적인 토지 개혁제도 추진으로 인해서 권문세족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에 권문세족들은 우왕, 창왕을 중심으로 결집해서 이들과 이성계 일파를 정계에서 몰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이성계 일파는 미리 사실을 인지하고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폐출하고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권문세족은 사실상 세력을 잃고 와해되었고,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는 신종의 7대손인 공양왕을 추대했다.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 2년에 일어난 윤이와 이초의 반란 음모 사건을 구실로 구세력의 실권자들을 대부분 옥에 가두면서 신진 세력의 기반을 공고히했고, 토지개혁 역시 과전법으로 일단의 개혁을 완료했다. 이로 인해 구세력은 경제적 기반을 잃었고, 더 이상 재기할 힘을 잃었다. 마침내 공양왕 4년에 조준과 정도전 등 개혁세력이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할 계획을 세웠으나 온건 개혁파인 정몽주가 고려를 보존하자는 쪽으로 이견을 제시하며 버티자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이고 정몽주 세력을 모두 정계에서 축출했다. 결국 이성계 일파는 반대세력을 모두 축출하고 고려의 실권을 온전히 차지했다. 

태조 이성계

1392년 7월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 수창궁에서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니 이것을 역성혁명이라 한다. 고려는 34왕 475년에 이르는 시간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성계는 신흥 무장세력 출신으로 고려의 기득권인 권문세족을 물리치고 신진사대부와 함께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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