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사] -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 (수당전쟁)

TimeMap Project

by 에이구몬 2022. 1. 11. 07:07

본문

반응형

[한국사] -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 (수당전쟁)

수나라가 멸망하고 곧 당나라가 중원의 패자로 자리잡았다. 당나라는 이연이 618년 건국하였고, 그 이후 잠시동안 내치에 신경을 쓰느라 동아시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구려는 수와의 전쟁으로 소모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당과의 친선관계에 적극적이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하다가 망한 걸 직접 목도한 당나라 역시도 고구려를 적대시 할 수 만도 없었다. 그러나 당 태종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당 내부에서 할거하는 군웅을 모두 평정한 당태종은 동돌궐까지 복속시켰다. 또한 서역을 정벌 하면서 당의 세력을 확고히 해나가는 작업을 펼쳤다. 고구려도 앞으로 다가올 전쟁을 예상하고 16년에 걸쳐서 부여성에서 발해만의 비사성에 이르는 지역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당 고조 이연

이렇게 전운이 감돌 무렵 고구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고구려가 당에 유화책을 쓰는 것에 반대하던 주전파 연개소문은 고구려 귀족들을 숙청하고 대내외적으로 강경책을 펼쳤다. 연개소문은 영류왕과 반대파 귀족들을 죽이고 영류왕의 조카이던 보장왕을 즉위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막리지가 되어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당 태종 또한 고구려를 굴복시키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오랫동안 준비한 당 태종은 645년에 대규모 군대를 요동으로 출발시켰다. 그러나 수나라처럼 대규모 병력은 아니었고, 전쟁에 단련된 훌륭한 정예병들이었다. 당나라군은 요하 일대의 성들을 차례차례 함락시켰고, 요동성을 함락시키기도 하였다. 요동성, 개모성, 비사성 등 요하 일대의 성들이 차례로 함락당하면서 요동 중앙은 완전히 당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신성이 당군의 공격에 맞서 함락되지 않자 신성을 통한 육지 보급선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다. 당군은 육지보급이 아닌 비사성, 건안성을 함락시켜 요동반도를 해양 보급선으로 만들어 오골성을 통해 평양성으로 진격하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하였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건안성을 함락시켜야 했는데 건안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건안성 동북쪽에 위치한 안시성을 먼저 함락 시켜야 했다. 당태종은 건안성, 안시성, 그리고 신성을 동시에 공격하여 각 성이 유기적인 협력을 못하게 하고, 자신의 20만 본진으로 하여금 안시성을 공격케 하였다. 그러나 안시성이 당태종의 본진에 맞서 2개월이나 항전하자 당군은 크게 당황하였다. 

당군은 안시성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으며 공격하였으나 고구려군이 이를 역공하는가 하면, 거듭된 공격과 회유책에도 안시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이에 고구려 군은 요동의 함락된 성들을 다시 되찾자 보급선과 요동의 거점을 잃은 당군은 전선 고착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었다. 더욱이 9월에 들어서면서 요동은 이미 차가운 계절풍이 불기 시작했고, 당군은 마침내 소득없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당군의 퇴각하는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는데, 자치통감에 따르면 요수의 진흙에 수레와 말이 나아가지 못했고, 태종이 직접 나무를 지고 섶을 묶어 퇴각하였다고 한다. 

당은 이후에도 소규모 병력으로 고구려군의 방어능력을 정찰하면서 계속 해서 공격해왔고, 당군 혼자서 고구려를 정벌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여 고구려 후방의 신라와 손을 잡고 연합작전으로 고구려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고구려는 북과 남 양쪽에서 전선을 펼치게 되어 점차 어려운 상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