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 사후의 권력다툼
▲ 징기즈칸 가문의 계보도
징기즈칸은 1227년 대외원정을 가던 도중 사망하였다. 징기즈칸은 생전에 셋째아들인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지명해두었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뒤 막내아들인 톨루이는 몽골의 관습에 따라 특수지위인 ‘화로의 주인’을 이용해 후계자가 되려고했다. 쿠릴타이 개최를 미루면서 까지 기회를 엿보았지만 징기즈칸의 유언을 묵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 징기즈칸
징기즈칸의 네 아들 (- 주치, 차가다이, 우구데이, 톨루이)중 징기즈칸이 후계로 지목한 3남 우구데이가 1229년 칸으로 즉위하였다. 톨루이와 우구데이의 사이는 벌어졌으며 곧 톨루이가 사망하게 되자 그 간극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후 1241년 우구데이칸의 사망으로 계승을 둘러싼 권력다툼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이번 계승은 별다른 격변 없이 1246년 우구데이의 장남 구육에게 권력이 이양되었다. 그러나 구육이 서방원정 도중인 1248년 급사하자 다시 계승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징기스칸의 첫째아들인 주치는 세아들을 두었고 그중 둘째가 주치 가문의 대표를 맡고있었다. 바투는 러시아 원정을 마친 뒤 킵차크 초원에서 머무르기는 했지만 거대한 군대와 징기즈 일족의 장자라는 점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세력이었다. 그는 일찍이 우구데이 가문의 구육과 크게 다툰 적이 있어 이번 계승에서는 우구데이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라 4남이던 톨루이의 가문에서 내세운 후계자를 지지했다.
우구데이 가문은 징기즈칸의 유언을 내세우며 저항했지만 바투가 보낸 군대의 군사적 시위에 굴복하여 징기즈칸의 4남 톨루이의 맏아들인 뭉케의 즉위를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뭉케가 즉위하며 몽골의 권력은 완전히 톨루이 가문으로 넘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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