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 몽골 초원에 부는 바람
9세기 위구르 제국의 멸망이후 12세기 중반 몽골 고원의 유목민들은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몽골 초원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전쟁으로 인하여 키르기즈, 오이라트 나이만, 몽골 , 타타르등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전쟁의 원인에는 위구르제국의 붕괴 이후 패권싸움과 거란 여진과 같은 외부세력의 등장등이 있었다. 몽골을 포함한 초원의 세력들은 경쟁의 우위에 서기 위해서 철을 확보하고 무기와 물자가 유입되는 교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싸웠다.
1162년에 태어난 몽골의 태무진은 몽골고원을 통합한다. 1206년 테무진은 오논강의 발원지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몽골 고원의 모든 유목민들이 자신의 지배 아래 통합되었음을 선포하고 스스로 ‘징기즈 칸’이라는 칭호를 취했다. 또한 이 쿠릴타이에서 국가 운영을 위한 기본적 제도들이 마련되었다. 지금까지 대립과 반목을 되풀이하던 유목민들은 강력한 조직과 규율로 무장된 새로운 기마군단으로 꾸려졌다. 또한 몽골의 이름아래 하나의 군대가 되었다.
이때부터 징기즈칸은 1227년 사망할때까지 약 20년을 대부분 대외원정으로 보냈다. 몽골 고원 주위의 세력부터 원정을 시작하였는데 1207년 키르기즈를 시작으로 오이라트를 12087년 복속 시켰다. 또한 오이라트의 도망간 왕자 쿠출룩을 추격키 위해서 중앙아시아로 군대를 보냈고 1209년에는 탕구트를 공격해 복속시키고 1211년 여진과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 금은 곧 수도를 포위당하자 화친을 맺지만 몽골이 철수하자 수도를 개봉으로 옮겨버린다. 이에 격분한 몽골은 다시 남하하여 황하 이북을 점령하고 전쟁을 계속한다.
또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1218년 오트라트에서 호레즘으로 보낸 사신단이 학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징기즈 칸은 서방원정을 시작하게 된다. 1219~1225년의 전쟁으로 호레즘은 멸망했고 중앙 아시아와 서아시아의 많은 도시들은 몽골의 발굽아래 폐허로 변하게 된다.
징기즈 칸은 죽기 직전에도 탕구트 원정에 나섰다가 1227년 사망했다. 징기즈 칸의 목적은 원정을 통한 정복과 지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금나라가 항복하자 말머리를 돌렸고 호레즘을 멸망시킨 후 군대를 돌려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징기즈 칸 사후 그의 후예들의 목적은 확실히 정복과 지배였다. 징기즈 칸의 후계자 우구데이는 즉위 직후인 1229년 부터 세계정복전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며 이러한 정복전쟁은 약 반세기 후인 1279년까지 진행되었다.
서로는 헝가리에 달했고 팔레스타인 아인 잘루트에서 이집트의 군대와 싸우기도 했다. 흑해 연안을 장악하고 남으로는 남송의 수도 항주까지 1276년에 함락시키므로서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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