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왕조의 혼란과 유목민족의 이주
후한말의 혼란한 정치상황과 군사적 충돌로 인해 중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후한이 몰락하던 2세기말부터 서로 다투던 위촉오는 280년이 되에서야 진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의해 혼란을 끝낸다. 진은 촉한의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위나라의 대신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건국하였다. 건국 초기에는 어진 정치로 새로운 국가를 다져나갔으나 말년에는 향락에 빠져 나라의 기강이 흐트러진다.
2대 황제인 혜제때에는 이러한 혼란에 말미암아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왕들이 8왕의 난을 일으키고 국운이 기울게된다. 약 16년간 일어난 반란에 변경방비에 틈이 생기게 되고 장성 이북에 거주하던 많은 유목민족들이 북 중국으로 대거 몰려들게 된다. 유목민족의 활동무대는 북중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1세기 중반 남하한 남흉노의 5부인구는 약 10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후한이 망한 3세기 후반이 되면 약 200만명에 달하는 흉노, 선비인들이 주로 산서지역에 분포하게 되었다.
한족 왕조인 서진이 무너지고 낙양을 잃고 남쪽으로 가면서 민족 이동의 물결은 더욱 거세어졌다.
4세기 초에 이미 600만에서 700만에 달한 이민족 인구는 부견이 통치하는 전진의 시대에는 약 1000만에 이르렀다. 이처럼 정치 사회 문화 경제등 모든 방면에서 북방의 유목민적 요소와 중국의 농경적 문화가 서로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서진의 멸망인 316년 부터 수나라의 건국이 581년까지의 시기는 북위의 태무제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을 기점으로 전 후반으로 나뉜다 . 약 130년에 걸친 전기의 시기는 흉노와 선비 갈, 강 , 저 같은 5호들이 세운 16개국의 크고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져 있어 이 시기를 5호 16국의 시기라고 부른다.
▲ 북위(北魏: 386~534)
이렇게 북중국이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이를 평정한것은 선비계통의 탁발부가 건설한 왕조 북위였다. 원래 싱안링 북부의 산지에 거주하던 이들은 1세기 말경 훌룬 부이르 지방으로 이주했다가 2세기 후반 2차 이주가 이루어져 내몽골 인산산맥 부근으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호흐호트 방면 성락지방에 거주하다가 4세기 초 산서성 대동의 평성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도무제가 즉위한뒤 국호를 위로 바꾸고, 태무제가 하, 북연, 북량등을 멸망시켰다. 탁발부의 북위 왕조는 남으로는 한인들의 남조 정권과 대치하면서 북으로는 선비에 이어 초원을 장악한 유목국가 유연과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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