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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고려 무신의 난과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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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2. 1. 2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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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고려 무신의 난과 민란

고려에서 문벌귀족의 모순성이 계속해서 쌓여가던 때에 결국 갈등이 폭발했다. 고려의 모든 관직을 독점하고 권력을 휘두르던 문벌귀족은 무신의 난에 의해 몰락했다. 무신의 난은 1170년 8월 국왕의 보현원 행차를 틈타 정중부, 이고, 이의방 등 무신들이 지금까지 쌓여있던 불만을 폭발시키면서 시작되었다. 무신들은 문신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면서 고려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무신의 난 직후에는 바란 주도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먼서 이고와 이의방이 제거되었다. 정중부가 권력을 잡았으나 계속해서 권력자가 바뀌었다. 정중부 다음에는 경대승, 이의민등이 차례로 권력을 움켜쥐었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지도 않았고 내부에서의 갈등도 심각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무신정권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최씨 일가는 60년간 국정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을 누렸다. 

 

최씨 일가의 집정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로 내려가 최항, 최의에게 차례로 계승되었다. 그러다 1258년에 최의가 정변으로 살해당하자, 새로운 집정자로 김준이 등장했다. 김준 또한 임연에게 권력을 뺏기고, 임연의 아들 임유무가 권력을 쥐고 있다가 원의 압력으로 인해 임유무가 제거되면서 다시 고려에는 왕정이 회복되었다. 동시에 무인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무신 집권기는 고려에서 민란이 가장 많이 일어난 시기였다.  무신들은 부패한 문신들에 대해 일어난 반란이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모순된 사회경제적 혁신을 이루지는 못했다. 무인들 역시 농민을 가혹하게 수탈했고, 농민과 노비들 역시 이들의 무신의 난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봉기했다. 전통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하층민의 봉기가 폭발적으로 일어난 셈이다. 이러한 민란은 무인정권 초창기에 자주 일어났다. 망이, 망소이의 항쟁과 경주 김사미의 항쟁등이 있다.

최충헌이 권력을 잡은 이후로도 하층민의 항쟁은 계속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의 봉기가 있기도 했다. 최충헌 정권의 강경진압으로 민란은 사그러들었지만, 여전히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1218년에는 서경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이 등장했고, 대몽항쟁 기간에도 1237년 담양에서 백제 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몽골의 전면적인 침략으로 인해 민란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민란은 체제의 개혁은 가져오지 못하고 몽골의 침략아래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말 사회개혁에 이러한 민란이 배경의 작용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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