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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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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1. 1. 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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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저 멀리 북방에서 중원으로 이동한 유목민족 5민족을 5호라고한다. 흉노, 선비, 갈, 저, 강 등 다섯 유목민족은 진나라의 팔왕의 난이 종결될 즈음 각자의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한다. 304년 산서 지방을 근거로 흉노의 유연이 대선우를 자청하며 한나라(전조)를 건국한다. 사천에서는 이웅이 성도왕을 자칭하면서 5호16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유목민족들은 후한시대부터 중원으로 끊임없이 유입되었다. 한무제 이후 흉노는 내분으로 인하여 사실상 한에 융화되고 있었고 다른 민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관중지역의 인구중 과반수가 이들 유목민족이었다. 이들과 한족간의 갈등 역시 첨예해지고 있었다. 

5~6세기 병사 복원도

선우를 자칭한 한나라 유연의 후계자 유총은 310년 사마씨의 서진 수도 낙양을 공략하여 함락시켰다. 낙양의 왕공사민 3만여명을 살해하고 서진 황제 회제를 사로잡아 수도 평양으로 끌고갔다. 311년 유총은 회제와 서진의 신하등 10만여명을 살해했다. 이 소식을 접한 서진에서는 민제를 다시 장안에서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316년 다시 전조군에게 무너져 서진은 4대 52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진이 멸망하자 한족정권은 중원을 5호에게 내어주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다. 강남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정권인 동진을 건국한다. 이러한 사건을 영가의 난, 영가의 상란이라 부른다. 이 사건은 한족의 역사에는 치욕스런 역사이지만, 대당 제국의 출현과 다민족 국가인 중국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중원을 빼앗긴 한족은 보다 안정된 곳을 찾아서 피난길에 나섰다. 이민의 주된 귀착지는 남쪽의 강남이었으나 서북의 하서회랑과 동북의 만주지역도 귀착지 역할을 하였다. 이 가운데 주요 종점은 양주와 형주였다. 이들은 동진 왕조 건립의 주요세력이 되었고, 이후 송, 제, 양, 진 등 남조 정권 통치세력의 주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민들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회 주도세력이 되면서 중원에서 피어난 귀족제도는 그대로 강남에 이식되었다. 이 귀족제는 교민과 강남의 토착 호족에 의해 정착 유지되었다. 5호의 중원진출로 야기된 민족이동은 강남의 개발을 불러왔고 강남의 원주민, 즉 만족이라 총칭되는 소수민족의 출현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등장은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기도 했고 반란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민들의 강남진출로인하여 강남이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의 영역이 된것 역시 이 시기에 들어서이다. 이런점에서 이 시대 유민의 이동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5호16국 시대는 유연의 한나라가 성립한 304년에서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는 439년까지의 기간을 지칭한다. 136년간의 기간동안 중원은 끊임없는 분열과 통일을 반복했다. 5호 16국 시대가 분열과 통일을 거듭하게된 배후에는 특이한 정치체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농경민인 한족과 유목민을 통치하는 조직을 따로두어 이를 호한분치라고 하였다. 또한 종실의 여러왕이 군권을 장악하는 종실적 군사 봉건제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제도들은 국가의 통일 역량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작용하여 통일 정권의 등장을 어렵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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