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 진나라의 전국통일
전국시대 전쟁이 계속 되면서 사회 곳곳에서는 불만이 쌓여갔다. 모든 국력을 쏟아부어 진행해야 했던 전쟁이니 만큼 많은 양의 물자가 전쟁에 소비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국가의 백성들이 부담해야했다. 또한 이전 시대에 비해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국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징병되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상인들 역시도 전쟁으로 상업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고 전쟁을 종식해야한다는 사회 각 계층의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국 7웅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는 진이었다. 진은 전국시대 후반 제의 몰락 이후에 사실상 독존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후 50년 동안 무리한 겸병을 진행하지 않고 새로운 강국의 부상만을 사전에 봉쇄하기위해 여러 나라를 번갈아가며 공격하였다. 이는 곧 6국의 평균적 약화를 불러왔고, 6국의 연합 및 공동대응능력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결국 진은 응축된 국력을 바탕으로 기원전 230년에 국력이 가장 약했던 한을 겸병하기 위해 공격하였다. 한에 이어서 위, 초, 연, 조가 차례로 진에게 공격당해 멸망하였고 마지막으로 기원전 221년 제나라가 멸망하면서 전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기원전 221년에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왕은 정이었다. 13세에 즉위하여 진을 통치하였던 정은 철저한 법치주의 정책으로 38세에 통일을 달성한다. 그 후 자신의 칭호를 황제로 바꾸어 유일한 지배자임을 과시했다. 또한 전국을 통일 한 후 전국에 군현을 설치하여 중앙 집권체제를 갖추었다.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여 통일제국의 기반도 닦았다. 진 제국의 실용적 법치주의는 전국시대를 막내리게 하였으며 새롭게 시작되는 진제국의 기반이 되었다.
통일 직후인 기원전 220년 진시황은 진의 옛 땅인 서북쪽 일대의 순행을 나선것을 시작으로, 사망하는 순간까지도 순행에 나섰다. 약 10년간 모두 다섯차례에 걸쳐 중국 전역을 순행하였다. 물론 이런 순행은 순탄치 않았다. 무력으로 합병한 여섯 나라의 땅에 황제가 직접 가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어었다. 장량같은 인물들의 습격이 있었고, 훗날 초패왕 항우 역시도 이러한 진시황의 순행을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진시황은 순행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순행은 지역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황제의 권위를 알리는데에 목적이 있었다. 또한 순행하며 각종 제의에 열을 올렸는데 이는 하늘에 제사의식을 함므로서 자연재해를 막고 제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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