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순(趙應順)
1885년 12월 4일생, 함경남도 갑산군 회사면(會社面) 도화리(桃花里) 출생
1906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1908년 러시아에서 전제익 의진에 입대
1908년 7월 3일, 동의회 전제익 부대 소속으로 국내 진공작전 참여했으며 동의회 소속
전제익 의병은 약 200~300명이었으며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진격하였다.
1908년 7월 10일, 전제익 부대의 홍의동 전투로 일본군 척후병 사살
1908년 7월 20일, 동의회 의병은 영산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패배 및 러시아 귀환
1909년 3월 5일 동의단지회 참가한다.
1910년 6월 미주에서 결성된 대한인국민회에 참가한다.
1913년 북간도로 망명한 이동휘와 접촉
1917년 재중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대한 참간장 제출, 처단 실행자로 활동
1917년 우랄지방에서 나자구 동림무관학교 재건을 위한 노동
1918년 김알렉산드라와 접촉,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국민회를 조직, 노동회로 변경,
인사회당 입당
1919년 한국독립단 부단장 역임했으나 병기가 없어 곧 해산
1921년 5월 고려공산당 창립대회 노령대표자격으로 참석
9월 자유시참변에 대해 「大韓革命軍側의 聲討文」에 노농회 대표로 참가
1922년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에 협력 (경성지검)등으로 검거되어 3년간 복역
1926년 스찬(연해주 수청)에서 야학교사로 활동을 마지막으로 기록이 끊김
201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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