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TRO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는 이 남자는 지금 막 신이 되려 하고 있다.
당고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사오니 손님 여러분 께서는 한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하암~
상록수역에서 당고개행 4호선에 하품을 하며 몸을 실은 이 남자는 지금 막 4호선의 신이 되었다.
#.2 4TH GOD
신이라고 하니 대단한 것 처럼 보이지만 4호선의 신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다. 각 호선의 신들은 자신이 신인줄 모르고 지내는게 대다수다. 그저 남들보다 운 좋게 자리에 앉고 운 좋게 시간에 딱딱 맞추어 지하철을 타는게 행운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매일 일상처럼 반복되는 행운이 있을리 있겠는가? 행운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인지한 신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사라져버린 전 4호선의 신처럼.
#.3 NEW Challenger
어제처럼 그리고 내일처럼 지하철에 탄 남자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비도 오고 쌀쌀한 날씨에 에어컨이 켜져있는 지하철을 탈 생각에 걱정이 가득했는데 오히려 따스하다. 아침 출근시간대에 걸쳐져 있는 시간대임에도 어제와는 다르게 자리가 비어있다. 타자마자 7인석의 끝자리가 비어있다니. 지독히도 운수 좋은 날이다.
4호선의 신이 된 남자는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잠에 빠져든다. 상록수에서 길음까지 1시간 하고도 15분의 길이다. 학교에서 오전 교시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만 학교에 늦지 않게 들어 갈 수 있다.
한번 잠들면 잘 깨지 않는 남자에게 때때로 한기가 들어 잠을 깨웠다. [사당역]에서 한번, [충무로역]에서 한번. 여전히 날씨는 비가 오고 있었고 에어컨은 매섭게 몰아쳤다. 문이 열릴때마다 한기가 들이치는게 밖에 많이 추운가보다 라며 눈을 굳게 닫는 남자. 이 한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겠는가. 잠이 깼음에도 눈꺼풀을 꾹꾹 눌러담는 남자를 보며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한 무리의 남녀가 손가락질을 하는것을 남자는 알지 못했다.
#.4 NEST
잠깐씩 드는 한기를 빼면 오늘의 등교(=여행)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오늘도 하염없이 서서가야하는지 걱정하며 집을 나섰는데 타자마자 앉았고 계속 잤다. 평소라면 학교에서도 계속 꾸벅꾸벅 졸았을 텐데 지하철에서 계속 잤더니 학교에서 졸지도 않았다.
김군? 어제 잘 잤나봐? 오늘은 한번도 안 조네?
교수의 비아냥 섞인 농담도 오늘은 즐겁게 웃으며 넘길 만큼 컨디션이 좋다. 교수도 하루에 두시간씩 통학을 해봐야한다. 잠이 오는지 안오는지.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가뿐하니 수업도 잘 듣고 팀플도 무사히 잘 마쳤다. 아침이 잘 풀리니 하루가 잘 풀리는 기분이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 남자에게 두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남자의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 까지 가야하는데 북한산을 넘어서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타는 방법과 버스를 타고 길음역으로 내려가 버스를 타는 방법. 남자는 오늘 아침의 기억을 떠올리며 무엇에 홀린것마냥 길음역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더 4호선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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