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는거 안조아하는데
이건 좀 써두어야 겠다
어제부터잇었던 폭풍같은 일들
금요일 퇴근까지는 일상이었다.
늘 그렇듯 17시 퇴근을 했고 숨막히는 7호선에 묻혀 집으로 왔다.
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붕어가 사는 다리를
지나 집에 도착해서 급하게 저녁밥을 밀어넣었다.
운동시간을 맞추기 위해 나태함이 눌러오는 눈을 이겨내며 운동을 갔다.
주짓수는 재밌다.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와 샤워를 하고 몸을 뉘였다.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달에 한번밖엔 없다는 토요 휴무다.
순간 참을 수 없이 시간이 아까웠다.
첫 신병휴가를 받고 집에가는 기차가 고장으로 대전 즈음에 잠시 섰을때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꼈다.
옷을 입었다.
오늘은 어떤 녀석을 입을까 하다
고양이를 골랐다.
마음을 먹으니 행동은 빨랐다.
강남가는 직행버스를 탔고 마음만큼은 이미 메스 문 앞이었다.
들어가기전에 편의점을 들르러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노숙자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들고 나왔고 아르바이트생은 가게를 뛰쳐나와 그를 저지했다.
삶에 짓눌려 열심히 살던 여학생은 강남 대로변에서 노숙자에게 뺨을 맞아야만 했다.
그 모습에 주변 술집에서, 카페에서, 편의점과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다시 손을 드는 노숙자를 제지했고 아르바이트생을 다독였다.
도주하려던 노숙인은 19개쯤 되는 손에 붙잡혀 모든 관절에 관절기가 들어가는 경험을 해야했다.
경찰이 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갔고 그곳은 다시 금요일밤의 강남으로 떠들썩해졌다.
관절기 말고 턱을 두어대 후려칠껄 그랬나 후회를 하며 메스로 들어선다
정신없이 놀았다.
내일이 없는 것 처럼. 머리가 뽑혀질듯 흔들었다. 상모를 이렇게 돌릴껄. 아직도 목이 아프다.
이런 생각이 들 찰나에 주머니에 아뿔싸 핸드폰이 없어졌다.
이제 겨우 1시인데 엉엉 속상해
놀지도 못하고 핸드폰도 잃어먹었으니 심정이야 말로 표현이 안되었다.
급한대로 바닥을 싹 뒤졌다. 바닥을 뒤지면서 이것저것 많이 주웠다. 바구니 가득히 고물을 주운 장물애비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나와 같은 기종의 핸드폰과 누군가의 자켓, 넥타이를 주웠다.
넥타이는 목에 매고 자켓은 입었다.
나는 지금 결제수단도 없고 신분증도 없다. 언제쯤 집에 갈지 모르니 단단히 준비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전화 한통 하기도 쉽지 않았다.
낯선이의 전화 부탁은 어쩌면 낮이었다면 쉬웠을지 모른다.
나는 잡히지 않는, 잡혀도 내 사정을 듣고 도망가는 택시들과 함께 걸어서 아레나와 기억 안나는 어떤 클럽을 지나 한남동으로 들어섰다.
나를 믿겠다는 택시기사님 한분을 만나
가까스로 집에 올 수 있었다.
차비는 13900원이지만 믿음의 가격으로 집에서 현금을 가져와 2만원을 드렸고 차를 돌려 나가실때까지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추적하니 메스에 그대로 있었다.
12시쯤 방문하니 오후 9시에나 오라고 이야기 한다. 문지기 형의 문신이 눈에 띄여 알겠다고만 되뇌이며 나왔다.
학교에 들렀다. 날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본 날씨중 최고였다.
동아리 행사에 참석해서 집단적 독백을 목터져라 외쳤다. 그래 이맛이지.
신이나다가도 핸드폰 생각에 금방금방 울적해졌다.
내일 출근이라는 심적 압박을 안고 다시 아까 들었던 오후 9시에 맞추어 가기 위해 동아리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다시 메스다. 다시 다시 메스다.
24시간동안 3번이나 메스에 오다니....
기분이 미묘하다.
들어가면서 부터 위치추적 서비스에 붙은 소리내기 기능을 켜고 고양이처럼 살금히 들어갔다.
떨리더라.
아무소리도 안 날까봐.
사물놀이 10년하느라 뭉개진 청력을 있는대로 끌어 모았다.
돌발성 난청은 옛 일이다.
난 들을 수 있다.
이정도 청력집중력이라면 초소근무때 영화 보는거 안걸렸을 텐데.
아
저 멀리서 소리가 난다.
할부 두달 넣은 내 핸드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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