倭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依山島爲國邑. 舊百餘國, <漢>時有朝見者, 今使譯所通三十國.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其大官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所居絶島, 方可四百餘里, 土地山險, 多深林, 道路如禽鹿徑. 有千餘戶, 無良田, 食海物自活, 乘船南北市 . 又南渡一海千餘里, 名曰<瀚海>, 至一大國, 官亦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方可三百里, 多竹木叢林, 有三千許家, 差有田地, 耕田猶不足食, 亦南北市 .
'왜'인은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고, 산과 섬을 의지하여 나라의 읍이 있다. 예로부터 백여개의 나라가 있어, '한'나라 때에는 알현하는 자가 있었다. 이제 그 역관이 통하는 곳이 삼십나라이다. 군에서 나아가 '왜'에 이르는데, 물로 가서 해안을 따라 돌면 '한국'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다 동쪽으로 가면 '구사한국'의 북쪽에 이르러 거리가, 칠천여리나 된다. 처음 하나의 바다를 건여 천여리에 '대마도'에 이른다. 그 큰 관리를 '비구'라 하고, 부관을 '비노모리'라 한다. 떨어진 섬에 거주하는데, 거리가 사백여리이다. 땅은 산이 험하고 깊은 숲이 많고, 도로는 짐승이 다니는 길과 같다. 호수는 천여호이고 좋은 밭은 없어, 바다에서 나오는 것을 먹어 스스로 생활하며 배를 타고 남북으로 다니며 쌀을 사들인다. 또 남으로 바다 건너 천여리에 일명 '한해'를 건너면 큰 나라가 하나 있는데, 역시 관리를 '비구'라 하고 부관을 '비노모리'라 한다. 사방 삼백리이며, 대나무와 나무가 모여 많은 산림을 이루니, 삼천가정도가 있으며 차이는 밭이 있어 밭을 경작하는데 부족함이 있어 역시 남북으로 쌀을 사들인다.
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有四千餘戶, 濱山海居, 草木茂盛, 行不見前人. 好捕魚鰒, 水無深淺, 皆沈沒取之. 東南陸行五百里, 到<伊都國>, 官曰爾支, 副曰泄謨 ·柄渠 . 有千餘戶, 世有王, 皆統屬<女王國>, 郡使往來常所駐. 東南至<奴國>百里, 官曰 馬 , 副曰卑奴母離, 有二萬餘戶. 東行至<不彌國>百里, 官曰多模, 副曰卑奴母離, 有千餘家. 南至<投馬國>, 水行二十日, 官曰彌彌, 副曰彌彌那利, 可五萬餘戶. 南至<邪馬壹國>, 女王之所都, 水行十日, 陸行一月. 官有伊支馬, 次曰彌馬升, 次曰彌馬獲支, 次曰奴佳 , 可七萬餘戶. 自<女王國>以北, 其戶數道里可得略載, 其餘旁國遠絶, 不可得詳.
또 바다를 건너, 천여리에 '말노국'에 이르는데 사천여호가 있으며, 산기슭의 바다에 거처한다. 초목이 너무 우거져, 길을 갈 때 앞사람을 볼수가 없을 정도이다. 물고기와 전복을 잡기를 좋아하는데 물이 깊이 않고 얕아 자맥질하여 이를 잡는다. 동남쪽 육지를 따라 오백리에 '이도국'이 있는데, 관리를 '이지'라 부르고, 부관을 '설모고', '병모고'라 부른다. 천여호가 있으며, 세세토록 왕이 있는데 모두 '여왕국'에 속해 있어, 고을에 사신이 왕래하고, 항상 머물러 있다. 동남으로 백리에 '노국'이 있는데 관리를 '시마고' 부관을 '비노모리'리 부르는데, 호수가 이만여호이다. 동쪽으로 백리에는 '불미국'이 있어, 관리를 '다모'라 하고 부관을 '비노모리'라 부르며, 호수는 천여가이다. 남쪽으로 '투마국'이 있어 물로 이십일을 간다. 관리를 '미미'라 하고, 부관을 '미미나리'라 부르는데, 가히 오만여호이다. 남쪽으로 '사마대국'이 잇어 여왕이 거하는 도읍으로 물로 십일을 가고 육지로는 한달이 걸린다. 관리를 '이지마'라 하고 다음을 '미마승', 다음을 '미마획지', 다음을 '노가제'라 하니 가히 칠만여호이다. 이 '여왕국'의 북쪽에 있는 나라의 호수와 길를 가히 얻어 기록한 것인데 그 나머지 주변의 나라는 너무 멀어 끊어져 가히 자세히 얻을 수가 없었다.
次有<斯馬國>, 次有<已百支國>, 次有<伊邪國>, 次有<都支國>, 次有<彌奴國>, 次有<好古都國>, 次有<不呼國>, 次有<姐奴國>, 次有<對蘇國>, 次有<蘇奴國>, 次有<呼邑國>, 次有<華奴蘇奴國>, 次有<鬼國>, 次有<爲吾國>, 次有<鬼奴國>, 次有<邪馬國>, 次有<躬臣國>, 次有<邑利國>, 次有<支惟國>, 次有<烏奴國>, 次有<奴國>, 此女王境界所盡. 其南有<狗奴國>, 男子爲王, 其官有狗古智卑狗, 不屬女王. 自郡至<女王國>萬二千餘里.
다음에 <사마국>, <이백지국>, <이사국>, <도지국>, <미노국>, <호고도국>, <불호국>, <저노국>, <대소국>, <소노국>, <호읍국>, <화노소노국>, <귀국>, <위오국>, <귀노국>, <사마국>, <궁신국>, <읍리국>, <지유국>, <오노국>, <노국>,이 있는데, 이 여왕을 경계의 끝이다. 남쪽에 '구노국'이 있는데, 남자가 왕을 하고, 관리를 '구고지비구'라 하는데, 여왕에 속해 있지 않다. 이 군은 '여왕국'에서 만 이천여리나 된다.
男子無大小皆 面文身. 自古以來, 其使詣中國, 皆自稱大夫. <夏后><少康>之子封於<會稽>, 斷髮文身以避蛟龍之害. 今<倭>水人好沈沒捕魚蛤, 文身亦以厭大魚水禽, 後稍以爲飾. 諸國文身各異, 或左或右, 或大或小, 尊卑有差. 計其道里, 當在<會稽>·<東冶>之東. 其風俗不淫, 男子皆露 , 以木 招頭. 其衣橫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髮屈 ,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其地無牛馬虎豹羊鵲.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竹箭或鐵鏃或骨鏃, 所有無與< 耳>·<朱崖>同.
남자들은 애 어른 없이 모두 얼굴에 문신을 하는데, 예로 내려온 것이다. 사신이 중국에 이르러 스스로를 대부라 칭하였다. '하후 소강'의 아들을 '회계'에 봉하였는데, 머리를 깍고 문신을 함으로써 교룡의 해를 피하였다. 이제 '왜'의 사람들이 자맥질하여 물고기와 조개잡기를 좋아하니 문신으로 큰 물고기와 바닷짐승이 싫어하게 하여 후에 점점 꾸미게 된 것이다. 여러 나라의 문신은 각각 다르다. 혹은 왼쪽에 있고, 혹은 오른쪽에, 크고 자고, 신분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다. 그 길을 계산하는데 마땅히 '회계'와 '동치'의 동쪽에 있다. 그 풍속은 음란하지 않고, 남자들은 모두 상투를 틀고 무명으로 머리를 감싼다. 그 옷은 다만 가로로 하여 서로 연결하여 동여메는데 바느질 하지 않는다. 부인들도 머리를 올려 묶고, 통채로 옷을 지어 중앙에 구멍을 뚫고 머리부터 옷을 입는다. 벼가 있고, 모시 삼 양잠이 있어 길쌈하고, 가는 모시와 비단이 있고, 그 땅에 소와 말, 호랑이, 돼지, 양, 까치가 없다. 병기로 창과 방패, 나무활을 쓰고, 목궁은 아래는 짧고 위가 길다. 대나무로 화살에 쇠나 혹은 뼈로 화살촉을 하기도 하는데, '담이'와 '주애'와 같이 있고 없음에 있는 것이다.
<倭>地溫暖, 冬夏食生菜, 皆徒跣. 有屋室, 父母兄弟臥息異處, 以朱丹塗其身體, 如中國用粉也. 食飮用 豆, 手食. 其死, 有棺無槨, 封土作 . 始死停喪十餘日, 當時不食肉, 喪主哭泣, 他人就歌舞飮酒. 已葬, 擧家詣水中 浴, 以如練沐. 其行來渡海詣中國, 使一人, 不梳頭, 不去 蝨, 衣服垢汚, 不食肉, 不近婦人, 如喪人, 名之爲持衰. 若行者吉善, 共顧其生口財物; 若有疾病, 遭暴害, 便欲殺之, 謂其持衰不謹. 出眞珠·靑玉.
'왜'의 땅은 따뜻하여 겨울에도 여름음식과 반찬이 나오며, 모두 맨발이다. 집이 있어 부모형제가 함께 거하지만 거처는 다르다. 붉은색 진흙같은 것을 몸에 바르는데, 중국의 분가루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음식을 하는데는 '변두'를 사용하고 손으로 밥을 먹는다. 사람이 죽으면 관이 있느나 곽은 없이 흙으로 무덤을 만든다. 처음 사람이 죽흐며 십여일을 상을 치루는데 마땅히 이때고기를 먹지 않고 상주는 곡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장사를 마치면, 집안이 모두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연욕'과 같다. 사신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에 갈때는 한 사람이 머리에 빗질하지 않고, 이나 서캐도 잡지 않고, 의복은 더럽게 하고, 고기도 먹지 않고, 부인과 가까이 하지 않으니 상을 치루는 사람과 같다. 이를 '지쇠'라고 한다. 만일 길을 가는 자가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재물을 그 사람에게 주고, 만일 질병이 있거나, 나쁜해를 당하면 이를 죽일려고 하는데, '지쇠'가 삼가지 않았다고 그런 것이다. 진주와 푸른옥이 나온다.
其山有丹, 其木有 · ·豫樟· ·投 ·烏號·楓香, 其竹篠 ·桃支. 有薑·橘·椒· 荷, 不知以爲滋味. 有 ·黑雉. 其俗擧事行來, 有所云爲, 輒灼骨而卜, 以占吉凶, 先告所卜, 其辭如令龜法, 視火坼占兆. 其會同坐起, 父子男女無別, 人性嗜酒.{《魏略》曰:其俗不知正歲四節, 但計春耕秋收爲年紀.} 見大人所敬, 但搏手以當 拜. 其人壽考, 或百年, 或八九十年. 其俗, 國大人皆四五婦, 下戶或二三婦. 婦人不淫, 不妬忌. 不盜竊, 少諍訟. 其犯法, 輕者沒其妻子, 重者滅其門戶 及宗族 尊卑各有差序, 足相臣服. 收租賦. 有邸閣.
산에는 단사가 있는데, 그 나무로는 남·저·예장·유력·투강·오호·풍향 등이 있고, 대나무로는 가는대와 조지가 난다. 생강과 귤, 산초나무와 양화가 있지만, 맛을 보태는 것인줄 알지 못한다. 원숭이 와 검은 꿩이 있다. 그 풍속에 일이 있으면 이르는 곳이 있는데, 뼈를 불살라 점을 치는 것이다. 길흉을 점칠 때 먼저 점치는 곳에 고하는데 그 법이 거북점과 같다. 불이 터지는 것을 보아서 점을 치는 것이다. 모임에서 앉아서 하는데, 부자와 남녀의 차이가 없다. 사람들 성질에 술을 즐긴다. [위략에 그 풍속에 정확히 해와 사절기를 알지 못한다. 다만 봄에 밭갈고 가을에 거두는 것으로 그 해의 기준으로 삼는다] 어른에게 공경을 보이는 것은 단지 손을 잡고 꿇어 엎드려 절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수명은 혹은 백살이요 혹은 팔구십살이다. 풍속에 나라의 어른들은 모두 사오명의 부인이 있는데, 하호들도 혹 이삼명의 부인이 있다. 부인은 음란하지 않고, 투기 하지 않는다. 도둑이 없고, 송사가 적다. 법을 범하면 가벼운자는 그 처자를 죽이고, 무거운 자는 그 집안에서 종족까지 멸한다. 높고 낮음에 차이가 있으니, 복종해야 한다. 세금을 거두고, 문설주가 있다.
國國有市, 交易有無, 使<大倭>監之. 自<女王國>以北, 特置一大率, 檢察諸國, 諸國畏憚之. 常治<伊都國>, 於國中有如刺史. 王遣使詣京都·<帶方郡>·諸<韓國>, 及郡使<倭國>, 皆臨津搜露, 傳送文書賜遺之物詣女王, 不得差錯. 下戶與大人相逢道路, 逡巡入草; 傳辭說事, 或 或 , 兩手據地, 爲之恭敬. 對應聲曰噫, 比如然諾.
나라에 시장이 있어 교역이 있는데 '대왜'가 이를 관리한다. '여왕국'의 북쪽에 특별히 큰 기관하나를 두는데, 여러 나라를 살피는 것으로 여러나라들이 이를 두려워 하고 꺼린다. '이도국'을 다스리는데 나라 중앙에 자사와 같은 것을 항상둔다. 왕이 경도나 '대방군' 여러 '한국'과 '왜국'의 군에 사신을 보내어 여왕에게 하사하는 물건과 문서를 보내와 전하는데, 섞임이 없었다. 하호들이 길에서 대인을 만나면 뒷것을질쳐 풀속에 들어간다. 전하는 말로 혹은 웅크리고 있거나 엎드려있는데 양손을 땅에 댄어 공경을 나타낸다. 대답할때는 '아' 그러는데 이것은 그렇다는 것이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壻, 有男弟佐治國.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飮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
그 나라는 본래 역시 남자가 왕이었다. 칠팔십년후에 '왜국'에 난이 이서 서로 공격하고 벌하며 지내다가 함께 여자를 왕으로 세웠다. 일명 '비미호'로 귀신을 부리고 능히 백성을 미혹게 하여 이미 성인인데도 남편이 없다. 남자 동생이 있어 나라를 다스림을 도왔다. 왕으로써 왔는데 보았다는 사람은 적다. 여자종 수천이 시중드는데도 오직 남자 한명이 음식을 대고, 나고들면서 말을 전한다. 거처하는 궁실과 누각과 성책은 엄하게 만들었고, 항상 병사로써 지키고 있다.
<女王國>東渡海千餘里, 復有國, 皆<倭>種. 又有<侏儒國>在其南, 人長三四尺, 去女王四千餘里. 又有<裸國>·<黑齒國>復在其東南, 船行一年可至. 參問<倭>地, 絶在海中洲島之上, 或絶或連, 周旋可五千餘里.
'여왕국'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천여리에 다시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의 종류이다. 또한 그 남쪽에 '주유국'이 있는데 사람들의 키가 삼사척으로 '여왕국'에서 사천여리이다. 또한 '나국'과 '흑치국'이 그 나라 동남쪽에 있는데 배로 일년을 가야 이른다. 모두 '왜'의 땅으로 바다 가운데에 섬으로 끊어져 있고 혹은 연해 있기도 하니 사방 가히 오천리이다.
<景初>二年六月, <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 求詣天子朝獻, 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其年十二月, 詔書報<倭女王>曰: [制詔<親魏倭王><卑彌呼>: <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次使<都市牛利> 奉汝所獻男生口四人, 女生口六人, 班布二匹二丈, 以到. 汝所在踰遠, 乃遣使貢獻, 是汝之忠孝, 我甚哀汝. 今以汝爲<親魏倭王>, 假金印紫綬, 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 其綏撫種人, 勉爲孝順. 汝來使<難升米>·<牛利>涉遠, 道路勤勞, 今以<難升米>爲率善中郞將, <牛利>爲率善校尉, 假銀印靑綬, 引見勞賜遣還.
'경초'이년 유월 '왜여왕'이 대부 '난승미'등을 보내어 군에 이르러, 천자에게 조헌하기를 구하자 태수 '유하'가 서울에 사신을 보냈다. 그해 십이월 조서를 내려 '왜여왕'에게 말하길 ' '친위왜왕 비미호' '대방태수 유하'가 당신이의 대부 '난승미'와 다음사신'도시우리'를 보내와 남자 4명과 여자 육명, 포 두필이장을 받치니 이에 이르렀다. 당신이 있는 곳이 먼데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치니 당신의 충효가 이와 같아, 내가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당신을 '친위왜왕'을 삼는다. 그리고 금으로 만든 인과 붉은 빛 인끈을 봉해서 '대방태수' 에게 보내는 것이니, 당신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힘써 효도하고 잘 순종하도록 하라. 당신이 보낸 사신 '난승미'와 '도시우리'는 길이 먼데 수고가 많았기로, 이제 '난승미'를 솔선중랑장을 삼고, '우리'를 솔선교위를 삼아 은으로 만든 인과 푸른 인끈을 주고 불러 보고 위로한 다음 돌려 보내는 바이다.
今以絳地交龍錦五匹· {臣<松之>以爲地應爲 , <漢><文帝>著 衣謂之 是也. 此字不體, 非<魏朝>之失, 則傳寫者誤也.}絳地 粟 十張· 絳五十匹·紺靑五十匹, 答汝所獻貢直. 又特賜汝紺地句文錦三匹·細班華 五張·白絹五十匹·金八兩·五尺刀二口·銅鏡百枚·眞珠·鉛丹各五十斤, 皆裝封付<難升米>·<牛利>還到錄受. 悉可以示汝國中人, 使知國家哀汝, 故鄭重賜汝好物也.]
그리고 강지교룡금 오필과 [ 신하'송지'가, 땅에 비단을 상응하게 한 것은 '한 문제'가 검은옷 입은것과, 두터운 비단을 취한것을 말했으니,이것이다. 이 글귀가 없는것은 위나라때 빠뜨린것이 아니라, 이전에,베껴쓰던 자들의 착오이다], 강지추속계 십장, 청강 오십필, 감청 오십필을 주어 당신이 받친 공물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또 특별히 너에게 감지구문금 삼필과 새반화계 오장, 백견 오십필, 금 팔냥, 오척도 두자루, 동경 일백 매, 진주와 공단 각 오십근씩을 모두 포장하여 '난승미'와 '우리'에게 주어 돌려 보내는 터이니, 너희는 이를 갖다가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여 주어서 우리 나라가 너희를 아끼는 뜻을 알게 하도록하라. 그래서 정중하게 이같은 좋은 물건을 너희에게 하사하는 바이다] 했다.
<正始>元年, 太守<弓遵>遣建忠校尉<梯儁>等奉詔書印綬詣<倭國>, 拜假<倭王>, 幷齎詔賜金·帛·錦 ·刀·鏡·采物, <倭王>因使上表答謝恩詔. 其四年, <倭王>復遣使大夫<伊聲耆>·<掖邪狗>等八人, 上獻生口·倭錦·絳靑 · 衣·帛布·丹木· ·短弓矢. <掖邪狗>等壹拜率善中郞將印綬. 其六年, 詔賜<倭><難升米>黃幢, 付郡假授. 其八年, 太守<王 >到官. <倭女王><卑彌呼>與<狗奴國>男王<卑彌弓呼>素不和, 遣<倭><載斯>·<烏越>等詣郡說相攻擊狀.
'정시' 원년 '태수 궁준'이 건중교위 '제휴'등을 보내서 조서와 인수를 가지고 왜국에 가서 '왜왕'에게 절하고, 아울러 금백과 금계, 도경, 채물 등을 하사하였다. 이에 '왜왕'은 표문을 올려 조서와 물건을 내린 은혜에 회답해 왔다. 사년에 '왜왕'은 다시 사신으로 대부 '이성기'와 '액사구' 등 팔인을 보내서 포로 몇 명과 왜금, 강청, 겸금, 의백, 포단, 목부, 단궁시 등을 바쳐 왔다. 이에 '액사구' 등에게 한결같이 솔선중랑장의 벼슬을 주고 인수를 주었다. 육년에 조서를 내려 '왜국'의 '난두미'에게 황기를 주고, 부군을 주었다. 팔년에는 태수 '왕기'가 와서 보고하기를, '왜국의 여왕 비미호'와 '구노국'의 남왕 '비미궁호소' 사이에 불화해서 '왜국'에서는 '재사', '오월' 등을 보내서 그들의 서로 공격하는 모양을 보고했다고 한다.
遣塞曹 史<張政>等因齎詔書·黃幢, 拜假<難升米>爲檄告喩之. <卑彌呼>以死, 大作 , 徑百餘步, 葬者奴婢百餘人. 更立男王, 國中不服, 更相誅殺, 當時殺千餘人. 復立<卑彌呼>宗女<壹與>, 年十三爲王, 國中遂定. <政>等以檄告喩<壹與>, <壹與>遣<倭>大夫率善中郞將<掖邪狗>等二十人送<政>等還, 因詣臺, 獻上男女生口三十人, 貢白珠五千, 孔靑大句珠二枚, 異文雜錦二十匹.
이에 중국에서는 색조연사 '장정'등을 보내서 조서와 황기를 내려 '난승미'에게 벼슬을 주고 화친하도록 타일렀다. '비미호'가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어 직경이 백여 보나 되게 한 다음 여기에 노비 백여 명을 순장했다. 뒤를 이어 다시 남왕을 세웠으나, 온 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복종하지 않고 저희끼리 서로 죽이고 싸워서 이 때 죽은 사람만도 천여 명이나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비미호'의 일가 딸이 되는 '대여'를 세웠다. 이 때 대여의 나이는 겨우 십삼세였는데 비로소 나라안의 인심이 정해졌다. '정' 등이 '대여'를 타이르는 글을 보냈더니, '대여'는 '왜국'의 대부 솔선중랑장 '액사구' 등 삼십명을 '정'에게 보내 와서 뵙고 포로 삼십명과 흰 구슬 오십덩이, 청대구주 두장, 이문잡금 이십필을 바쳐 왔다.
[출처] 삼국지 위서 동이전 원문과 번역|작성자 an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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