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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전쟁과 러시아 제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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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구몬 2022. 7. 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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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전쟁과 러시아 제국 <1>

니콜라이 1세

니콜라이 1세는 기본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러시아 제국에서 오래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의무라고 여겼다. 게다가 유럽과 러시아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만큼 혁명이라는 적에 대하 공동으로 대항하려 했다. 혁명은 나폴레옹의 패배와 더불어 사라지는 듯 했으나, 1830년, 1848년 그리고 다른 해에도 거듭 발생하였고, 1815년의 합의를 뒤엎고 무효화 하려하였다. 러시아의 화제이자 유럽의 헌병인 니콜라이는 이러한 기조에 대항해 대외정책을 이어 나갔다.

투르크멘차이조약의 첫 장

니콜라이가 제위에 오른 직후인 1826년 러시아는 페르시아(이란)과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그루지야 영향력을 위한 전쟁의 연장선상이었는데 1826년 6월 부터 1828년 2월까지 계속되었다. 페르시아의 패배로 러시아는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통해 예레반시와 아르메니아 일부, 카스피해 해군권, 상업적 이권 등을 얻었다. 

또한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의 승리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1829년에 아드리아노플 조약을 체결하면서 오랜시간 각축전을 벌이던 오스만 투르크 세력을 제국의 남쪽에서 억누를 수 있었다. 이듬해인 1830년 7월 파리에서 일어난 혁명은 차르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뒤이어 9월의 벨기에 봉기,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소요사태로 니콜라이는 점차 분노에 차기 시작했다. 니콜라이는 이러한 상황을 분쇄하고자 결심했고, 폴란드에 군세를 집결하여 서쪽으로 진군하고자 했다. 그러나 외교적문제와 1830년에 폴란드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로 러시아의 서유럽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좌절되었다. 

폴란드 11월 봉기, 폴란드 봉기 (1830-1831)

폴란드는 러시아의 통치 하에서 불만이 계속 쌓여갔다. 1815년 합의에 의해서 러시아 황제가 통치하는 폴란드 왕국이 생겨났지만, 많은 폴란드인들은 이것이 과거 폴란드 분할에 필적하는 ‘제 4차 분할'이라고 부르면서 분개했다. 폴란드 왕국은 입법부와 군대, 화폐, 제도, 행정부를 갖춘 입헌군주국이었지만, 러시아 차르에 의해서 그러한 권리는 침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서쪽에 군대를 집결시키자 폴란드에서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의해 서유럽 군사개입에 이용 될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1830년 11월 바르샤바의 장교단 사이에서 러시아에 반기를 든 봉기가 일어났다. 

에밀리아 플라테르 가 이끄는  낫을 든 농민 , 1831

니콜라이 1세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했기에 폴란드 봉기는 곧 민족 봉기로 확대되었다. 러시아는 폴란드에서 정부와 군대에 대해 통제를 상실했고, 전쟁을 통해 재정복해야만 했다. 폴란드 인들은 울창한 삼림에서 게릴라 전을 펼치며 항전했으나 지도부가 조직되지 않았고, 수적 열세에 몰려 1년여만에 이들의 봉기는 러시아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결과로 폴란드는 헌법을 잃고 유기령으로 대체되어 러시아 제국의 분리할 수 없는 부분으로 간주되었다. 정복자인 파스케비치 제독은 잔인하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폴란드를 러시아화 하며 새롭게 통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화는 폴란드 뿐 아니라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에서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니콜라이 1세 시기에 들어 그 영토들을 러시아 본토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혁명이 진압된 이후에 동화적책이 더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러시아가 폴란드의 11월 봉기를 제압했다는 내용을 담은 폴란드 프로메테우스,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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