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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해석] 동몽선습(童蒙先習) ; 총론(總論)

정신분열초기/원문모음집

by 에이구몬 2019. 11. 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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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선습(童蒙先習) ; 총론(總論) 1

此五品者 天敍之典 而人理之所固有者 人之行 不外乎五者而唯孝爲百行之源
차오품자 천서지전 이인리지소고유자 인지행 불외호오자이유효위백행지원

▶ 이 다섯 가지 일은 하늘이 펼쳐 준 모범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도리이다.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是以 孝子之事親也 鷄初鳴 咸漱 適父母之所 下氣怡聲 問衣寒 問何食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 出必告 反必面 不遠遊 遊必有方 不敢有其身 不敢私其財
시이 효자지사친야 계초명 함수 적부모지소 하기이성 문의한 문하식음 동온이하청 혼정이신생 출필고 반필면 불원유 유필유방 불감유기신 불감사기재

▶ 이 때문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운지 추운지를 여쭈며, 무엇을 잡수시고 마시고 싶은지를 여쭈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돌봐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여쭈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님을 대면하며, 멀리 나가 놀지 않으며 나가 놀되 반드시 일정한 장소를 두며, 감히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히 재물을 자기 것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父母愛之 喜而不忘 惡之 懼而無怨 有過 諫而不逆 三諫而不聽 則號泣而隨之 怒而撻之流血 不敢疾怨 居則致其敬 養則致其樂 病則致其憂 喪則致其哀 祭則致其嚴
부모애지 희이불망 악지 구이무원 유과 간이불역 삼간이불청 칙호읍이수지 노이달지류혈 불감질원 거칙치기경 양칙치기악 병칙치기우 상칙치기애 제칙치기엄

▶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거든 기뻐하되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거든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께서 과실을 저지르시면 말리되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시거든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며, 부모님께서 노(怒)하여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치 않으며, 거처할 때에는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환이 드셨을 때는 근심을 극진히 해야 하고, 상(喪)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극진히 해야 한다.

若夫人子之不孝也 不愛其親而愛他人 不敬其親而敬他人 惰其四肢 不顧父母之養 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 好貨財 私妻子 不顧父母之養 從耳目之好 以爲父母戮 好勇鬪 以危父母
약부인자지불효야 불애기친이애타인 불경기친이경타인 타기사지 불고부모지양 박혁호음주 불고부모지양 호화재 사처자 불고부모지양 종이목지호 이위부모륙 호용투 이위부모

▶ 부모님께 불효하는 자식은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며, 자기 어버이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공경하며, 사지(四肢)를 게을리 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장기나 바둑,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을 사랑해서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이목(耳目)의 욕망을 좇아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사나워서 부모님을 위태롭게 한다.

噫 欲觀其人 行之善不善 必先觀其人之孝不孝 可不愼哉 可不懼哉 苟能孝於其親 則推之於君臣也 夫婦也 長幼也 朋友也 何往而不可哉 然則 孝之於人 大矣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
희 욕관기인 행지선불선 필선관기인지효불효 가불신재 가불구재 구능효어기친 칙추지어군신야 부부야 장유야 붕우야 하왕이불가재 연칙 효지어인 대의 이역비고원난행지사야

▶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한지 아닌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면 그 마음을 군신간과 부부간과 장유간과 붕우간에 미루어감에 어떤 경우에 적용한들 옳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효(孝)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면서 또한 고원(高遠)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然 自非生知者 必資學問而知之 學問之道無他 將欲 通古今 達事理 存之於心 體之於身 可不勉其學問之力哉 玆用 其歷代要義 書之于左
연 자비생지자 필자학문이지지 학문지도무타 장욕 통고금 달사리 존지어심 체지어신 가불면기학문지력재 자용 기력대요의 서지우좌

▶ 그러나 스스로 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이가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의지하여 알 수 있으니 학문하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고금(古今)의 사리(事理)를 통달하여 마음속에 보존하며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니 학문하는 힘을 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역대의 중요한 의리를 뽑아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둔다.

동몽선습(童蒙先習) ; 총론(總論) 2

蓋 自太極肇判 陰陽始分 五行相生 先有理氣 人物之生 林林總總 於是 聖人首出 繼天立極 天皇氏 地皇氏 人皇氏 有巢氏 燧人氏 是爲太古 在書契以前 不可考
개 자태극조판 음양시분 오행상생 선유리기 인물지생 림림총총 어시 성인수출 계천립극 천황씨 지황씨 인황씨 유소씨 수인씨 시위태고 재서계이전 불가고

▶ 태극이 처음으로 판별되어 음과 양이 비로소 나누어진 시기로부터 오행(五行)이 서로 생성됨에 먼저 이(理)와 기(氣)가 있었다. 사람과 물건이 많이 생성되더니 이에 성인(聖人)이 먼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인간의 표준을 세웠으니, 천황씨(天皇氏)와 지황씨(地皇氏)와 인황씨(人皇氏)와 유소씨(有巢氏)와 수인씨(燧人氏)가 태고시절의 성인이다. 서계(書契)문자가 나타나기 이전이기 때문에 상고할 수가 없다.

伏羲氏 始八卦 造書契 以代結繩之政 神農氏 作耒耜 製醫藥 黃帝氏 用干戈 作舟車 造曆算 制音律 是爲三皇 至德之世 無爲而治
복희씨 시팔괘 조서계 이대결승지정 신농씨 작뢰사 제의약 황제씨 용간과 작주차 조력산 제음률 시위삼황 지덕지세 무위이치

▶ 복희씨(伏羲氏)가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긋고 서계(書契)문자를 만들어 결승(結繩)문자로 시행하던 정사를 대신했고, 신농씨(神農氏)가 쟁기와 보습을 만들며 의술과 약을 만들고, 황제씨(黃帝氏)가 방패와 창을 사용하며 배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달력과 산수를 만들며 음률(音律)을 제정하셨으니 이들을 삼황(三皇)이라 일컫는다. 이 때는 사람들의 본성이 지극히 순박했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치를 베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少昊 顓頊 帝嚳 帝堯 帝舜 是爲五帝 皐夔稷契 佐堯舜 而堯舜之治 卓冠百王 孔子定書 斷自唐虞
소호 전욱 제곡 제요 제순 시위오제 고기직계 좌요순 이요순지치 탁관백왕 공자정서 단자당우

▶ 소호(少昊)와 전욱(顓頊)과 제곡(帝嚳)과 요(堯)임금, 순(舜)임금을 오제(五帝)라 일컫는다. 고도(皐陶)와 기(夔)와 직(稷)과 계(契)이 요임금과 순임금을 보좌했으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다스림이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공자(孔子)께서 서경(書經)을 산정(刪定)하심에 당(唐)·우(虞)시대로부터 단정하셨다.

夏禹 商湯 周文王武王 是爲三王 歷年 或四百 或六百 或八百 三代之隆 後世莫及 而商之伊尹傅說 周之周公召公 皆賢臣也 周公 制禮作樂 典章法度 粲然極備
하우 상탕 주문왕무왕 시위삼왕 력년 혹사백 혹륙백 혹팔백 삼대지륭 후세막급 이상지이윤부설 주지주공소공 개현신야 주공 제례작악 전장법도 찬연극비

▶ 하(夏)나라 우왕(禹王)과 상(商)나라 탕왕(湯王)과 주(周)나라 문왕(文王)·무왕(武王)을 삼왕(三王)이라 일컫는다. 왕조의 수명이 어떤 경우는 400년이며 어떤 경우는 600년이며 어떤 경우는 800년이었으니 삼대(三代) 시절에 융성했던 문물을 후세에는 미치지 못했고 상나라의 이윤(伊尹)이나 부열(傅說), 주나라의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모두 뛰어난 신하였다. 주공(周公)이 예악(禮樂)을 제작하셨으니 전장(典章)과 법도가 지극히 찬란하게 갖추어졌다.

及其衰也 五覇摟諸侯 以匡王室 若齊桓公 晋文公 宋襄公 秦穆公 楚莊王 迭主夏盟 王靈不振
급기쇠야 오패루제후 이광왕실 약제환공 진문공 송양공 진목공 초장왕 질주하맹 왕령불진

▶ 주(周)나라가 쇠미함에 미쳐 오패(五覇)가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을 바로 세웠으니 이를테면 제(齊)나라 환공(桓公), 진(晋)나라 문공(文公), 송(宋)나라 양공(襄公), 진(秦)나라 목공(穆公),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중국의 맹약을 주도하였으니 왕실의 위엄이 떨쳐지지 못했다.

孔子以天縱之聖 轍環天下 道不得行于世 刪詩書 定禮樂 贊周易 修春秋 繼往聖, 開來學而傳其道者 顔子曾子 事在論語 曾子之門人 述大學
공자이천종지성 철환천하 도불득행우세 산시서 정례악 찬주역 수춘추 계왕성, 개래학이전기도자 안자증자 사재론어 증자지문인 술대학

▶ 공자(孔子)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하셨으나 도(道)가 세상에서 시행되지 않아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산정(刪定)하시며 예(禮)와 악(樂)을 결정하시며 《주역(周易)》을 해설하시며 《춘추(春秋)》를 편수하셔서 지나간 성인을 계승하고 후세의 학자들을 인도하셨고, 그 도를 전수 받은 이는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기록은 《논어(論語)》에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大學)》을 기술하였다.

列國 則曰魯 曰衛 曰晋 曰鄭 曰趙 曰蔡 曰燕 曰吳 曰齊 曰宋 曰陳 曰楚 曰秦 干戈日尋 戰爭不息 遂爲戰國 秦楚燕齊韓魏趙 是爲七雄
열국 칙왈로 왈위 왈진 왈정 왈조 왈채 왈연 왈오 왈제 왈송 왈진 왈초 왈진 간과일심 전쟁불식 수위전국 진초연제한위조 시위칠웅

▶ 열국은 노(魯)·위(衛)·진(晋)·정(鄭)·조(趙)·채(蔡)·연(燕)·오(吳)·제(齊)·송(宋)·진(陳)·초(楚)·진(秦)나라 등이니 방패와 창이 날마다 이어져 전쟁이 끊이지 않아 마침내 전국시대가 되었으니 진(秦)·초(楚)·연(燕)·제(齊)·한(韓)·위(魏)·조(趙)의 일곱 나라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일컫는다.

孔子之孫子思生斯時 作中庸 其門人之弟孟軻 陳王道於齊梁 道又不行 作孟子七篇而異端縱橫功利之說盛行 吾道不傳
공자지손자사생사시 작중용 기문인지제맹가 진왕도어제량 도우불행 작맹자칠편이이단종횡공리지설성행 오도불전

▶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이 시기에 태어나 《중용(中庸)》을 저술하셨고, 그 문인의 제자인 맹가(孟軻)가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진술하셨는데 도가 또 시행되지 못하여 《맹자(孟子)》 7편을 저술하셨으나, 이단과 종횡과 공리의 학설이 성행해서 우리 유학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였다.

及秦始皇 呑二周 滅六國 廢封建爲郡縣 焚詩書, 坑儒生 二世而亡
급진시황 탄이주 멸륙국 폐봉건위군현 분시서, 갱유생 이세이망

▶ 진시황(秦始皇) 시대에 이르러서는 두 주나라를 병탄하고 여섯 제후국을 멸망시키며,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시행하며 시서(詩書)를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 속에 파묻어 죽이니 2대(代)만에 멸망하였다.

漢高祖 起布衣成帝業 歷年四百 在明帝時 西域佛法 始通中國 惑世誣民 蜀漢吳魏三國 鼎峙而諸葛亮 仗義扶漢 病卒軍中
한고조 기포의성제업 력년사백 재명제시 서역불법 시통중국 혹세무민 촉한오위삼국 정치이제갈량 장의부한 병졸군중

▶ 한나라 고조가 포의(布衣)로 일어나 황제의 위업을 이루어서 왕조의 수명이 4백년에 이르렀는데 명제(明帝)때에 서역(西域)의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유통하여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들을 속였다. 촉한(蜀漢)과 오(吳)와 위(魏)의 세 나라가 솥발처럼 대치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이 의리를 지켜 한나라를 부지하다가 병이 들어 전쟁터에서 죽었다.

晋有天下 歷年百餘 五胡亂華 宋齊梁陳 南北分裂 隋能混一 歷年三十
진유천하 력년백여 오호란화 송제량진 남북분렬 수능혼일 력년삼십

▶ 진(晋)나라가 천하를 다스림에 왕조의 수명이 100여 년에 이르렀는데 다섯 오랑캐나라가 중화를 어지럽히니 송(宋)·제(齊)·양(梁)·진(陳)에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수(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왕조의 수명이 30년에 그쳤다.

唐高祖太宗 乘隋室亂 化家爲國 歷年三百 後梁 後唐 後晋 後漢 後周 是爲五季 朝得暮失 大亂極矣
당고조태종 승수실란 화가위국 력년삼백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 시위오계 조득모실 대란극의

▶ 당(唐)나라 고조(高祖)와 태종(太宗)이 수(隋)나라 왕실의 어지러움을 틈타 일개 집안을 변화시켜 나라로 만들어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이르렀다. 후량(後梁)과 후당(後唐)과 후진(後晋)과 후한(後漢)과 후주(後周)를 오계(五季)라고 하니, 아침에 나라를 얻었다가 저녁이면 잃어버려서 크게 혼란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宋太祖 立國之初 五星聚奎 濂洛關閩 諸賢輩出 若周敦頤 程顥 程頤 司馬光 張載 邵雍 朱熹 相繼而起 以闡明斯道 爲己任 身且不得見容而朱子集諸家說 註四書五經 其有功於學者 大矣
송태조 립국지초 오성취규 렴락관민 제현배출 약주돈이 정호 정이 사마광 장재 소옹 주희 상계이기 이천명사도 위기임 신차불득견용이주자집제가설 주사서오경 기유공어학자 대의

▶ 송(宋)나라 태조(太祖)가 국가를 세운 초기에 다섯 별이 규성(奎星)에 모여 염(濂)·낙(洛)·관(關)·민(閩)에 여러 현인들이 배출되었으니, 주돈이(周敦)와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와 사마광(司馬光)과 장재(張載)와 소옹(邵雍)과 주희(朱熹) 같은 학자들이 서로 이어 나타나 이 유학의 도를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로 삼았지만 자기 몸조차도 용납 받지 못했다. 주자(朱子)가 제가(諸家)의 학설을 모아서 사서와 오경을 주해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크게 공을 세웠다.

然而 國勢不競 歷年三百 契丹 蒙古 遼 金 迭爲侵軼 而及其垂亡 文天祥 竭忠報宋 竟死燕獄
연이 국세불경 력년삼백 계단 몽고 료 금 질위침일 이급기수망 문천상 갈충보송 경사연옥

▶ 그러나 국가의 힘이 강하지 못하여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그쳤으니 거란과 몽골과 요(遼)와 금(金)이 차례대로 침략하고 망조를 드리움에 미쳐 문천상(文天祥)이 충성을 다하여 송(宋)나라에 보답하다가 마침내 연경의 옥에서 죽었다.

胡元滅宋 混一區宇 綿歷百年 夷狄之盛 未有若此者也 天厭穢德 大明中天 聖繼神承 於千萬年
호원멸송 혼일구우 면력백년 이적지성 미유약차자야 천염예덕 대명중천 성계신승 어천만년

▶ 오랑캐 원(元)나라가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면면히 백년을 이어갔으니 오랑캐가 세력을 떨침이 이 때만한 적이 없었다. 하늘이 더러운 덕을 싫어하셨는지라 대명(大明)이 하늘 한 가운데로 떠올라 성인(聖人)과 신인(神人)이 계승하였으니 아! 천만년을 이어가리로다.

嗚呼 三綱五常之道 與天地 相終始 三代以前 聖帝明王 賢相良佐 相與講明之 故 治日常多 亂日常少 三代以後 庸君暗主 亂臣賊子 相與敗壞之 故 亂日常多 治日常少 其所以世之治亂安危 國之興廢存亡 皆由於人倫之明不明如何耳 可不察哉
오호 삼강오상지도 여천지 상종시 삼대이전 성제명왕 현상량좌 상여강명지 고 치일상다 란일상소 삼대이후 용군암주 란신적자 상여패괴지 고 란일상다 치일상소 기소이세지치란안위 국지흥폐존망 개유어인륜지명불명여하이 가불찰재

▶ 아! 삼강오상(三綱五常)의 도리는 천지와 더불어 시종(始終)을 함께하니 삼대(三代) 이전에는 성스러운 임금, 명철한 군주와 어진 재상과 뛰어난 보좌관들이 서로 함께 강론하여 밝혔다. 그 때문에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았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적었는데 삼대(三代) 이후에는 용렬한 임금, 어두운 군주들과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신하와 집안의 도리를 해치는 자식들이 서로 함께 그것을 무너뜨렸다. 그 때문에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항상 적었다. 세상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우며 편안하고 위태로운 것과 나라가 일어나고 폐지되며 보존되고 멸망하는 까닭은 모두 인륜(人倫)이 밝혀졌느냐 밝혀지지 않았느냐가 어떠한지에서 말미암는다.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몽선습(童蒙先習) ; 총론(總論) ③

東方初無君長 有神人 降于太白山檀木下 國人立以爲君 與堯竝立 國號朝鮮 是爲檀君
동방초무군장 유신인 강우태백산단목하 국인립이위군 여요병립 국호조선 시위단군

▶ 동방에 처음에는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태백산(太白山)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임금으로 삼았다. 요(堯)임금과 동시대에 즉위하여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했으니 이가 단군(檀君)이다.

周武王 封箕子于朝鮮 敎民禮義 設八條之敎 有仁賢之化
주무왕 봉기자우조선 교민례의 설팔조지교 유인현지화

▶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자 (기자가)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서 여덟 조목의 가르침〔팔조지교(八條之敎)〕을 베풀었으니 어진 사람 기자의 교화가 있었다.

燕人衛滿 因盧綰亂 亡命來 誘逐箕準 據王儉城 至孫右渠 漢武帝討滅之 分其地 置樂浪臨屯玄菟眞蕃四郡 昭帝以平那玄菟 爲平州 臨屯樂浪 爲東府二都督府
연인위만 인로관란 망명래 유축기준 거왕검성 지손우거 한무제토멸지 분기지 치악랑림둔현도眞蕃四郡 소제이평나현도 위평주 림둔악랑 위동부이도독부

▶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노관(盧綰)의 난리를 피하여 망명해 와서 기준(箕準)을 유인하여 쫓아내고 왕검성(王儉城)을 차지하였는데 손자인 우거왕(右渠王)대에 이르러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낙랑(樂浪)·임둔(臨屯)·현도[玄菟]·진번(眞蕃)의 사군(四郡)을 만들었다. 소제(昭帝)가 평나(平那)와 현도를 합쳐서 평주(平州)로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의 두 도독부(都督府)로 만들었다.

箕準避衛滿 浮海而南 居金馬郡 是爲馬韓 秦亡人 避入韓 韓割東界以與 是爲辰韓 弁韓則立國於韓地 不知其始祖年代 是爲三韓
기준피위만 부해이남 거금마군 시위마한 진망인 피입한 한할동계이여 시위신한 변한칙립국어한지 불지기시조년대 시위삼한

▶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을 피해 바다에 떠서 남쪽으로 내려와 금마군(金馬郡)에 정착했으니 이것이 마한(馬韓)이다.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노역을 피하여 한(韓)나라로 들어오자 한(韓)나라가 동쪽 영토를 분할하여 제공하니 이것이 진한(辰韓)이다. 변한(弁韓)은 한(韓)나라의 영토에 나라를 세웠으니 그 시조와 연대를 알 수 없다. 이것이 삼한(三韓)이다.

新羅始祖赫居世 都辰韓地 以朴爲姓 高句麗始祖朱蒙 至卒本 自稱高辛之後 因姓高 百濟始祖溫祚 都河南慰禮城 以扶餘爲氏 三國 各保一隅 互相侵伐
신라시조혁거세 도신한지 이박위성 고구려시조주몽 지졸본 자칭고신지후 인성고 백제시조온조 도하남위례성 이부여위씨 삼국 각보일우 호상침벌

▶ 신라(新羅)의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진한(辰韓)의 영토에 도읍을 정하여 박(朴)을 성씨로 삼고, 고구려(高句麗)의 시조인 주몽(朱蒙)은 졸본(卒本)땅에 이르러 스스로 고신(高辛)씨의 후예라고 일컬어 그에 따라 고(高)를 성씨로 삼았고 백제(百濟)의 시조인 온조(溫祚)는 하남(河南)땅 위례성(慰禮城)을 도읍지로 정하여 부여(扶餘)를 성씨로 삼아서 삼국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여 서로 공격하였다.

其後 唐高宗 滅百濟高句麗 分其地 置都督府 以劉仁願 薛仁貴 留鎭撫之 百濟歷年 六百七十八年 高句麗 七百五年
기후 당고종 멸백제고구려 분기지 치도독부 이류인원 설인귀 류진무지 백제력년 륙백칠십팔년 고구려 칠백오년

▶ 그 뒤에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하여 유인원(劉仁願)과 설인귀(薛仁貴)로 하여금 머물러서 진무케 하였으니 백제는 왕조의 수명이 678년에 이르렀고 고구려는 705년이었다.

新羅之末 弓裔 叛于北京 國號泰封 甄萱 叛據完山 自稱後百濟 新羅亡 朴昔金三姓 相傳歷年 九百九十二年
신라지말 궁예 반우북경 국호태봉 견훤 반거완산 자칭후백제 신라망 박석금삼성 상전력년 구백구십이년

▶ 신라의 말기에 궁예(弓裔)가 북경(北京)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하였고 견훤(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완산주(完山州)를 점거하여 스스로 후백제(後百濟)라고 일컬었다. 신라가 멸망하니 박(朴)·석(昔)·김(金)의 세 성씨가 서로 왕위를 전수하여 왕조의 수명이 992년에 이르렀다.

泰封諸將 立麗祖爲王 國號高麗 剋殘群凶 統合三韓 移都松嶽 至于季世 恭愍無嗣 僞主辛禑 昏暴自恣而王瑤不君 遂至於亡 歷年 四百七十五年
태봉제장 립려조위왕 국호고려 극잔군흉 통합삼한 이도송악 지우계세 공민무사 위주신우 혼폭자자이왕요불군 수지어망 력년 사백칠십오년

▶ 태봉(泰封)의 여러 장수들이 고려의 시조 왕건(王建)을 세워서 왕으로 삼으니 국호(國號)를 고려(高麗)라고 하여 여러 흉악한 인물들을 이겨 없애고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도읍을 송악(松嶽)으로 옮겼다. 고려의 말년에 이르러 공민(恭愍)에게 후사(後嗣)가 없고 가짜 임금 신우(辛禑)가 어둡고 포악하며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공양(恭讓)이 임금 노릇을 못하여 마침내 망하기에 이르니 왕조의 수명이 475년이었다.

天命歸于眞主 大明太祖高皇帝 賜改國號曰朝鮮 定鼎于漢陽 聖子神孫 繼繼繩繩 重熙累洽 式至于今 實萬世無疆之休
천명귀우진주 대명태조고황제 사개국호왈조선 정정우한양 성자신손 계계승승 중희루흡 식지우금 실만세무강지휴

▶ 천명(天命)이 진정한 군주에게 돌아가니 명(明)나라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가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고쳐 내리자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여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빛내고 여러 차례 스며들어서 지금에 이르니 실로 만세토록 끝없을 아름다움이로다.

於戲 我國雖僻在海隅 壤地褊小 禮樂法度 衣冠文物 悉遵華制 人倫明於上 敎化行於下 風俗之美 侔擬中華 華人稱之曰小中華 玆豈非箕子之遺化耶 嗟爾小子 宜其觀感而興起哉
어희 아국수벽재해우 양지편소 례악법도 의관문물 실준화제 인륜명어상 교화행어하 풍속지미 모의중화 화인칭지왈소중화 자기비기자지유화야 차이소자 의기관감이흥기재

▶ 아!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하게 바다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토가 편소(褊小)하지만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모두 중화의 제도를 따라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고 교화가 아래에서 시행되어 풍속의 아름다움이 중화(中華)를 방불하였다. 이 때문에 중화인들이 우리를 소중화(小中華)라고 일컬으니 이 어찌 기자(箕子)가 끼쳐준 교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너희 소자(小子)들은 의당 보고 느껴서 흥기(興起)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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