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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조선의 개항과 불평등조약의 시작. 강화도조약

에이구몬 2022. 2. 2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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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조선의 개항과 불평등조약의 시작. 강화도조약

고종과 명성왕후

1873년 서양과 통상을 반대하면서 척화비까지 세우던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조선의 정권은 고종이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완전히 권력을 잡지 못했고 왕비의 인척인 민씨일가가 정국을 주도하는 형식이었다. 대원군을 부정하고 권력을 잡은 민씨세력은 척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외국에 통상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에 관심을 돌렸다. 

운요호 사건
운요호

 척화에 목숨걸던 대원군 정권이 무너지자 조선보다 훨씬 앞서서 개항한 일본은 조선을 자신들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개항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조선에 자국 군함 운요호를 파견하였다. 운요호는 부산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해로를 측정하고 함포를 쏘면서 무력 시위를 벌였다. 또 강화도 초지진에 운요호를 파견하여 조선 수비군을 자극하여 전투를 일으켰다. 이를 구실로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며 조선에 문호개방을 요구하였다. 조선의 일부 관료도 이 기회에 통상을 하자고 주장하여 결국 조선은 일본의 요구에 굴복해 조일수호조규를 1876년 조인하였다. 이 조약이 강화도에서 체결되었다고하여 강화도조약이라고도 부른다.

조일수호조규

조일수호조규는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입장에서 문제가 많은 조약이기도 했다. 수호조약과 뒤이어 체결된 조약 부록과 통상장정에는 관세와 항세에 대한 조항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일본인 거류지의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일본 화폐가 자유롭게 유통되기도 했다. 심지어 쌀을 비롯한 조선의 식량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수 있는 조약도 넣지 않았다.  이는 근대적 조약체결이 처음인 조선에게 있어 일본이 불평등 조약을 맺게 한것이다. 이는 일본이 열강들에게 당했던 일을 그대로 조선에 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1882년에는 미국과 조약을 맺었다. 미국과의 조약도 역시 불평등 조약이었다. 미국은 최혜국 약관을 집어넣고 치외법권까지 가져졌다. 뒤이어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서로 다른 나라들과 조약을 맺었으나 불평등한 조건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

조선의 이권에 크게 관심을 보인 나라는 청이다. 청은 임오군란과 감신정변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에 열을 올렸다. 1882년 청은 조선과 상민수륙무역장정을 맺고 경제 침투를 강화하였다. 이 조약에서 청은 조선이 자신의 속국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치외법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내륙에서의 청상인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결과로 청과 조선의 무역량은 점점 늘어나서 종전의 일본이 가지고 있던 점유율을 가지고 왔다. 조선은 일본과 청의 각축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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