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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 막부의 쇠락과 왕정복고, 대정봉환(大政奉還)

에이구몬 2018. 10. 3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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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의 쇠락과 왕정복고

▲ 고메이 일왕


페리의 방문을 계기로 막부는 열강의 세계질서에 편입되었다. 이후 1858년 미일 수호통상조약의 칙허문제로 굴본 국내의 정치적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

막부는 고메이 일왕에게 칙허를 요청했으나 당시 일왕이던 고메이 일왕이 이를 거부했다.

막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부의 최고 책임자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는 통상조약 조인을 강행하였다. 당시 일왕은 아무런 권력이 없는 명예직이었기에 막부는 당면에 직시한 통상조약을 강행한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막부의 태도에 대해 양이를 주장하던 세력들이 비판을 하므로써 도쿠가와 막부는 양이세력과 근왕세력 모두에게 정치적 권위를 도전받는 세태로 상황이 변하였다.


막부 말의 반 막부세력은 존왕양이론에 입각하여 막부를 비판하였다. 고메이 일왕이 불허한 통상조약을 막부의 뜻대로 강행한것이 발화점이 되어 존왕양이론이 대두된 것인데 존왕양이론은 도쿠가와 막부 후기에 나타난 미토학파의 명분론을 바탕으로한 존왕론과 화이사상을 바탕으로한 양이론이 결합된것이다.


존왕론과 양이론은 두 개념 모두 별개의 논리로 존속해왔으나 통상조약에대한 국내 정치의 갈등이 이 두 개념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였다.


막부는 이러한 반 막부 세력의 움직임에 대해 처음에는 ‘안세이의 대옥’이라고 불리는 강경 탄압책으로 대응하였다. 막부의 다이로 이이 나오스케는 양이파 인사들을 체포하여 사형을 포함한 처벌을 내렸으나 이는 불에 기름을 붓는격이었다. 막부에 대한 불만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막부의 중신 이이 나오스케의 암살사건이 1860년 3월에 일어났다. 이를 사쿠라다몬 사건이라고 한다.


이후 친막부파 인사와 서양인들에 테러가 확산되었고 과격파 존왕양이론자들은 일왕이 거주하는 교토를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곧 이들의 활동은 정치세력화 되어 1862년 조슈번에 양이론자들이 득세하여 한층 더 세력이 강화 되었다.

▲ 도쿠가와 이에모치


막부는 강경책만으로는 더 이상 반대세력을 누를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친화책으로 일왕 조정과의 관계개선을 꾀했다. 공무합체론을 내세우면서 막부는 고메이 일왕과 여동생 가즈노미야와 14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결혼을 추진하였다.



당시 정세가 막부와 조정, 반 막부세력과 친 막부세력이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어느정도 균형을 잡고 있던 정세는 1863년 막부측이 무력을 행사하면서 급변했다.

그해 8월 18일 막부는 군사력으로 존왕양이파의 근거지인 교토에서 이들을 제거했다.

8월 18일의 정변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다.

존왕양이파는 1864년 막부에 의해 점령된 교토를 무력으로 탈환을 시도하였다. 이를 긴몬의 변이라고 부르나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막부는 존왕양이파의 또 다른 근거지인 조슈번에 대한 정벌을 1864년에 단행하면서 반 막부운동은 잠시 주춤하게 된다.


막부군이 물러가고 난 뒤 조슈번에는 도막파 정권이 수립되면서 반 막부운동은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조슈번은 존왕양이론에서 양이를 제거하고 개국 노선을 취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막부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력 강화를 꾀했다. 1866년에는 조슈와 사쓰마 번이 동맹을 체결하면서 도막운동은 한층 더 힘을 얻었다.

사쓰마와 조슈 두 번은 에도 막부에 의해 탄압받았다는 점과 개항과 교역 통해서 타 번들이 재정적 압박을 받는것과는 다르게 재정적으로 튼튼했고 이를 통해 군사력도 증강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둘의 동맹은 반막부를 위한 필연적 동맹이었다. 이를 삿초동맹이라 부른다.

▲ 대정봉환(大政奉還)

삿초동맹까지 나타나는 모습에 막부는 위협을 느끼고 사카모토 료마가 제안한 도쿠가와씨 중심의 봉건연방제 계획을 받아들여서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을 단행한다.


1867년 10월 14일 단행된 대정봉환(大政奉還)은 도쿠가와씨가 장악하고있던 권력을 일왕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를 가진 조치였으나 이는 눈속임에 불과 했다. 막부의 의도는 반 막부 세력의 요구를 수용하여 일왕에게 권력을 돌려준다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실제로는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 도쿠가와 막부의 정치적 위상을 유지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막부의 의도를 꿰뚫어본 반 막부세력은 그해 12월  9일 왕정복고 쿠테타로 대응하였다. 사쓰마 조슈 연합군은 교토의 일왕 궁정을 장악하고 ‘왕정복고의 대호령’을 발표하였다.

이에따라 막부의 폐지와 심직의 설치, 장군의 관직사림과 영지 몰수 등이 결정되었다. 260여년간 계속되어온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급진적으로 진행된 반막부세력의 신정부는 도쿠가와 세력의 존속을 주장하는 친막부세력의 저항에 직면하였고 무력 전쟁으로 발발하게 된다.


이를 보신전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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