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 에도 막부의 성립(江戶幕府)
[일본사] - 에도 막부의 성립(江戶幕府)
히데요시가 1590년 호조씨를 멸망시키고 전국을 통일하였다. 히데요시는 도쿠가와를 경계하여 당시 변방인 간토로 이에야쓰를 전봉시켜서 약 250만석을 영유하게 하였다. 간토에서 이에야쓰는 본거지를 에도로 옮겨 개척에 힘썼다. 히데요시 정권 아래에서 2인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이에야스는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고다이로의 필두로 올라섰다.
▲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 (세잎접시꽃)
히데요시 사후 조선내 일본군을 철수시키고 조선과의 외교를 지휘하면서 지배권을 확립해 나갔다.
히데요시 정권에서의 실무 관료로 오봉행의 한사람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쿠가와씨의 지배권 확대에 불만을 품고, 고니시 유키나가와 더불어 고다이로인 모리 데루모토, 우키타 히데이에, 시마즈 요시히로등을 끌어들여서 반이에야쓰 군사를 일으켰다. 이를 서군이라 칭한다.
서군에 대항하여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와 동맹하여 이를 동군이라 칭한다.
서군과 동군이 1660년 9월 세키가하라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를 세키가하라 전투라고 한다.
▲ 세키가하라 전투 (1600년 9월)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필두로 한 동군이 승리하여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에야쓰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서군에 가담한 다이묘들의 영지 440만석을 몰수하여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동군의 주요 다이묘이던 모리 데루모토는 120만석에서 47만석, 우에스기 가케카쓰는 120만석에서 30만석으로 감봉되었다.
이렇게 얻은 토지는 동군의 다이묘에게 증봉하거나 자신의 가신들에게 지행하여 후다이다이묘 28명을 새로이 세웠다. 세키가하라 전투 전부터 도쿠가와 가문의 신임이 두터웠던 다이묘들이다.
도쿠가와는 전국의 주요 가도를 장악하고 주요 도시와 항구를 직할지로 삼아서 금은광과 화폐 주조권등을 장악하여 전국적인 경제기반을 확보하였다. 이후 1603년 쇼군이 되어 막부를 개설하였다. 일본사 세번째이자 마지막 막부이다. 1605년 쇼군직을 아들 히데타다에게 물려주고 전국 다이묘들에게 도쿠가와의 쇼군직 세습을 전국에 공포하였다.
에도막부는 1603년 부터 1867년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대정봉환까지 250년간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