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Map Project

일본사 - 무로마치 막부의 쇠퇴

에이구몬 2018. 10. 16. 14:53
반응형

무로마치 막부가 세워지고 시간이 흘러 무로마치 막부는 6 대 쇼군 요시노리 시기에 다시 동요하기 시작한다. 

1438년을 기점으로 커다란 내란이 여러차례 발생하여 사회가 혼란하였고 1441년에는 요시노리마저 암살당한다. 

요시노리는 분란의 시기때마다 쇼군의 권한을 강화하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슈고 다이묘의 불만은 커져있는 상태였다. 

요시노리는 쇼군의 권한을 강화하여 쇼군 권력의 전제성을 강화하려 했지만 다이묘의 저항으로 인해 암살당했다. 

그뒤 새롭게 취임한 7대 쇼군 역시 2년을 채 넘기지 못했고 8대 요시마사가 쇼군이 되었다. 

어린 요시마사가 쇼군으로 올랐으나 사치스러운 성향과 요시마사의 아내인 히노 도미코도 고리대에 관여하고 뇌물을 수수하는등

막부의 폐혜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상태에서 일어난 '오닌의 난'은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오닌의 난은 쇼군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지방의 슈고 다이묘(守護大名)들이 교토(京都)에서 벌인 항쟁이다. 사건의 발생 시점의

연호를 따서 오닌의 난으로 불리는 것이 통상이지만,

 주요 사건의 대부분이 분메이(文明) 연간에 걸쳐 있었다 하여 오닌·분메이의 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일관성 결여(애초에 동생 요시미를 후계자로 정했는데 뒤늦게 아들을 얻자 이를 번복한 점)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무로마치 막부의 간레이케(管領家)였던 호소카와 가쓰모토, 요시미를 지지함)와 야마나 모치토요, 요시마사의 아들을 지지함)의 대립이 표면화되면서 지방의 유력한 슈고 다이묘들도 속속 어느 한쪽에 가담하였는데, 

이는 다시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다이묘들의 의도와도 맞물려 있었다. 난은 규슈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막부나 슈고 다이묘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이를 통해 무로마치 막부 체제는 전국시대로 전환되었고, 100년 가까이 각지에서 다이묘들이 서로 항쟁하였다.

 또한 주요 전장이 된 교토가 폐허가 된 것을 비롯해 전국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황폐해지게 된다.

1467년 양측의 충돌을 계기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11년에 걸친 전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아시가루의 존재를 들수 있다.  아시가루라는 말은 발이 가볍다는 뜻인데 주로 기동성과 민첩성을 발휘하는 보병집단이었다. 방화와 약탈을 하고 이익을 좇아 쉽게 배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무사였다. 

막부의 실질적인 지배력이 미치는곳은 기나이 일부지역으로 한정 되었고 무로마치 막부는 더이상 전국적인 정권으로서 기능하지 못했다. 

쇼군의 권위가 추락하자 이에 의존하여 생활하던 중앙의 유력귀족과 사원세력도 크게 약화되었고 많은 슈고 다이묘들이 자신의 영지로 내려갔다.

각 지역에서는 슈고 다이묘들이 귀족과 사사의 장원을 침탈하여 영지로 삼고 침탈했으며 다양한 하극상이 일어났다. 

당시 하극상으로 인하여 유력 슈고 다이묘들은 약해져갔고 새로운 전국 다이묘가 각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대는 이제 전국시대로 넘어가며 100년간 지속될 전쟁으로 이어진다.

728x90
반응형